[아무튼, 주말]
[아무튼, 레터]
국가무형유산 제58호 줄타기의 한 장면 /마포문화재단
”어떤 사람이 그럽디다. 줄 하나 잘 타면 출세한다고. 그래서 아홉 살 때 줄에 올라 한평생 타고 있지만 별 볼일 없더라고! 매번 엉덩이나 깨지고 줄광대라고 손가락질이나 당하고 말여. 그래도 딱 하나 좋은 건 있더라고! 여러분들이 줄 아래서 저를 올려다본다는 것 말여! 자, 넋두리 그만하고 잘하면 살 판이요 잘못하면 죽을 판이로구나, 어디 한번 살 판이나 놀아볼까?”
국가무형유산 제58호 줄타기 보유자 김대균은 줄 위에서 이런 너스레를 들려주곤 했다. 광대 줄타기는 단순한 곡예를 넘어 익살과 풍자가 있는 전통예술이다. 줄광대는 말 그대로 외줄 인생을 산다. 줄 위에서 뛰고 솟고, 웃고 울고, 깨지고 터지고, 날치고 판치고…. 죽을 둥 살 둥 매달렸지만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아주 가끔은 실족도 했을 것이다.
지난 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야외광장. 지상 3m 허공에 외줄이 걸렸다. 이날은 김대균의 제자인 줄타기 이수자 한산하가 줄에 오를 참이었다. 어릿광대 놀음 후 과일로 상을 차리고 줄고사 사설부터 읊었다. “뜻깊은 자리에 판을 벌였으니 좋은 공연이 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 오늘 오신 분들 가정에도 웃음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일종의 기도. 줄을 타다 땅에 떨어지지 마라는 뜻으로 막걸리를 여기저기 뿌렸다. 구경하는 관객 수백 명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난 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야외광장에서 열린 줄타기 공연 /마포문화재단
삼현육각 소리가 들리더니 줄광대의 기예가 시작됐다. 빨간 부채 하나만 들고 외줄에 오른 한산하는 걷다 솟구치고 뛰고 날아다니며 야무지게 줄을 탔다. 하수에겐 작두날처럼 무서운 외줄이지만 고수는 공중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더 신바람을 낸다.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방심은 금물. 김대균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과욕은 위험합니다. 평생 줄 위에서 중심을 잡으면서 배운 것은 ‘가운데 중(中)’의 지혜예요.”
올림픽 역도 영웅 장미란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호명되면 플랫폼에 올라가 손에 탄마가루를 묻히고 심호흡을 합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들다가도 그 순간부터는 무아지경이에요. 역도에서 ‘성공’은 역기의 무게중심과 내 몸의 중심이 일치됐다는 뜻입니다. 부담되는 중량도 성공하면 거짓말처럼 하나도 안 무겁지요.”
하늘 가까이에 사는 줄광대와 땅을 딛고 선 역도 영웅이 모두 중심에 대해 말했다. 아슬아슬한 인생에도 ‘가운데 중(中)’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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