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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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金仁鎬 | I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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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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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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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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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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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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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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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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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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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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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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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2군 수비·주루코치 (2005~2007)
LG 트윈스 2군 작전·수비코치 (2009~2010)
LG 트윈스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11~2013)
LG 트윈스 2군 수석·작전코치 (2014)
kt wiz 2군 작전코치 (2015)
SK 와이번스 1군 작전·주루코치 (2016)
SK 와이번스 1군 외야수비코치 (2017)
kt wiz 2군 감독 (2019~2020)
광주진흥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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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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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스카우트 (200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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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1989 시즌 후 투수 이상구[3]를 상대로 태평양 돌핀스에 트레이드된 후에는 은퇴할 때까지 쭉 태평양-현대에서 몸담았다.
포지션은 처음엔 주로 2루수로 출전하고 유격과 3루를 백업하거나 간간히 외야수로도 출전하던 내야수였으나 1991년 김성갑과 염경엽이 들어온 이후로 점점 외야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지더니,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이후에는 가끔 2루수로도 출전하기도 했지만 주로 중견수나 우익수로 출전했고, 상황에 따라서 좌익수도 보기도 하는 외야수가 되었다. 즉, 수비로만 본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내야 외야 어디든 수비가 가능한 유틸리티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선두 타자로 나섰으나, 출루율이 영 좋지 못했으며 기대이하급이었다. 당시 선두 타자로 나선 선수는 김성갑, 염경엽, 김인호, 이희성, 여태구 등이 있으나 김성갑은 빙그레에서 하위타선이었는데다가 테이블세터진 2명에서 2번 타자로 자주 나왔고, 염경엽은 김인호보다 출루를 더 못하고, 성적은 더 나았던 이희성, 여태구는 반짝 활약하고 기량이 사라졌고, 이러다보니 결국 돌고돌아 그나마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 김인호가 1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팀명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뀌게 된 1996년에는 박재홍이 입단하면서 1번 타자 자리를 가져가나 했다. 그러나, 박재홍은 그 해 1번 타자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홈런을 잘 쳤고, 결국 3번 타자로 옮겨가면서 또 김인호가 1번 타자를 맡게 된다.[4] 물론 1996 시즌에는 타율은 2할 2푼대였지만 홈런 11개에 도루 25개라는 본인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우면서 나름 맹활약했다. wRC+가 100.7로 100을 넘긴 유일한 시즌.
1996년 포스트시즌은 김인호 야구 인생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시즌이었다.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경기에서 8타수 6안타 5득점의 기염을 토하면서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어 준PO MVP에 올랐다.[5] 쌍방울 레이더스와 맞붙었던 플레이오프에서는 2패로 뒤지고 있던 3차전에서 3회말 1사 1, 2루 때 김원형이 던진 공을 헬멧에 헤딩하는 장면을 연출했다.[6] 이 헤딩으로 1사 만루가 됐지만 김인호는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1루로 출루했다. (벤치 클리어링은 없었다.) 김인호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윤덕규가 초구를 받아쳐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하면서 현대 유니콘스는 3차전을 잡고 기사회생한 뒤 쌍방울 레이더스를 역스윕하고 199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1997년 문동환의 지명권을 풀어주는 대가로 전준호를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해 오면서[7] 김인호는 자연스럽게 경기 후반에 들어오는 대수비, 대주자 등 백업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현대에서 주장도 역임해 보는 등, 1998년 한국시리즈, 2000년 한국시리즈 2차례 우승도 해봤고[8] 2001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2005년부터 현대 유니콘스 2군에서 주루코치를 맡았다. 2008년 현대가 해체되고 히어로즈로 재창단된 이후에는 2군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2009년 김재박 감독의 부름을 받고[9] LG 트윈스에서 코치를 하게 되었다. 김재박이 물러난 후에도 계속 코치로 있었다.
그 후 외야수비코치, 주루코치를 거쳐서 김무관 2군 감독을 보좌할 2군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김기태 감독이 사임하고 조계현 대행을 거쳐서 양상문 감독이 취임하고, 조계현 수석코치가 2군 감독으로 옮김에도 김무관, 김정민, 손인호같은 2군 코치들이 1군으로 갈 때도 보직 변경이 없었다.
2014년 9월 인천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도중, LG 트윈스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2014 시즌 후 kt wiz의 2군 작전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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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시즌 후 SK 와이번스로 옮겼다. 보직은 1군 작전주루코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루지시로 주루사를 일삼고 있다. 7월 10일 kt전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상식 이하의 주루지시를 내릴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주력을 과대평가하는 건지 아니면 제대로 모르는 건지 상대팀의 중계플레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쓸데없이 과감한 주루를 요구한다. 이렇듯 정경배와 더불어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코치였지만 2017 시즌을 앞두고 팀 개편 과정에서 많은 코치들이 이탈하는 가운데에서도 살아남았다.[10] 대신 넥센에서 정수성 코치가 영입되면서 2017년부로 외야 수비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외야수비 겸 1루 코치로 보직을 옮기고도 별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고, 팬들 사이에서는 철밥통이라며 까이는 빈도가 더 늘고 있다.
결국 2017 시즌 종료 후 SK 와이번스를 떠났다. 신임 코치는 박재상.
2019년부터 kt wiz 2군 감독으로 영입되어 사실상 4년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2020 시즌을 끝으로 2년만에 계약이 해지되었다. 후임 감독은 서용빈.
kt를 떠난 후 2년 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3년 모교인 진흥고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첫 대회인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을 16강에 올려놓았으나 장충고에 패하며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11]
같은 해 개최된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상대팀 에이스(마산용마고 장현석)의 투구 동작에 대해 보크를 어필하자 장현석은 이닝을 마치고 진흥고 덕아웃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해 논란이 있었다.보크 지적 김인호 감독 광주진흥고 향해 쉿! 도발한 장현석..항저우 AG대표팀 막내의 당찬 모습 [O! SPORTS 숏폼 논란이 커지자 마산용마고에서 사과를 했고 김인호 감독은 흔쾌히 넘어갔다고 한다.'억울했던 고교 최대어' 장현석 "김인호 감독님께 도발? 말도 안되는 일"[청룡기 인터뷰
역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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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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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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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1989
|
49
|
87
|
.184
|
16
|
3
|
0
|
0
|
2
|
11
|
2
|
6
|
1
|
19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1990
|
94
|
252
|
.250
|
63
|
13
|
4
|
4
|
31
|
36
|
10
|
25
|
3
|
23
|
|
1991
|
60
|
151
|
.192
|
29
|
5
|
0
|
1
|
12
|
10
|
5
|
11
|
2
|
30
|
|
1992
|
58
|
108
|
.222
|
24
|
8
|
1
|
3
|
12
|
15
|
2
|
14
|
0
|
24
|
|
1993
|
72
|
203
|
.222
|
45
|
6
|
1
|
3
|
10
|
19
|
1
|
18
|
0
|
42
|
|
1994
|
105
|
304
|
.234
|
71
|
12
|
1
|
6
|
32
|
40
|
8
|
26
|
3
|
57
|
|
1995
|
88
|
273
|
.234
|
64
|
6
|
2
|
7
|
25
|
35
|
9
|
25
|
2
|
44
|
|
1996
|
122
|
406
|
.227
|
92
|
17
|
3
|
11
|
37
|
72
|
25
|
55
|
15
|
65
|
|
1997
|
56
|
189
|
.249
|
47
|
7
|
1
|
1
|
11
|
29
|
9
|
24
|
7
|
36
|
|
1998
|
41
|
74
|
.230
|
17
|
2
|
0
|
1
|
8
|
13
|
2
|
5
|
2
|
16
|
|
1999
|
113
|
293
|
.256
|
75
|
14
|
0
|
7
|
43
|
53
|
13
|
35
|
12
|
44
|
|
2000
|
115
|
281
|
.228
|
64
|
17
|
2
|
3
|
21
|
48
|
8
|
30
|
3
|
44
|
|
2001
|
92
|
162
|
.204
|
33
|
0
|
1
|
5
|
19
|
30
|
5
|
22
|
1
|
34
|
|
KBO 통산
(13시즌)
|
1065
|
2783
|
.230
|
640
|
110
|
16
|
52
|
263
|
411
|
99
|
296
|
51
|
478
|
[1] 11회 졸업생이며 동기생으로 송유석, 나광남, 이한열이 있다.
[2] 한문교육학과 (1985학번)
[3] NC 다이노스의 부사장을 맡고 있는 그 사람과는 동명이인이다.
[4] 사실 현대 유니콘스 출범 첫 해였던 1996년에는 박재홍과 김경기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년도 태평양 돌핀스의 빈약했던 타선이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 둘을 제외하면 팀 타선이 여전히 물방망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5] 준PO 초대 MVP다.
[6] 몸에 맞는 공의 규정에 따르면 피할 의사가 없을 경우 인정이 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그래서 피하려다가 맞았다는 판정을 내린 걸로 봐야 한다.
[7] 롯데는 문동환을 1차 지명했으나 문동환은 실업팀인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고 현대 피닉스와의 계약을 해지할 때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자세한 내용은 현대 피닉스 문서 참조.
[8] 특히 2000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좌익수로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9] 2009년 LG에선 김용달, 정진호, 장광호, 염경엽 등의 현대 출신 코치들이 많았다.
[10] SK 한 팀에서만 15년 이상 있어온 김경기, 김원형, 조웅천 등이 재계약에 실패하고 팀을 떠났다.
[11] 동향 라이벌 광주동성고와 광주일고도 16강까지 진출했으나 각각 경북고와 대구상원고에 막히며 8강 진출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