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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유원대학교 야구부 감독 공의식

by 아기 자동차 202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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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대학야구의 팀이다.

해체된 한중대 선수들을 받아들여 2018년에 창단했다. 감독은 공의식이다.

2022년 유원대 투수 오광민이 성균관대학교 야구부와의 경기에서 150개의 투구를 하며 9이닝 완투를 해 논란이 있었다.기록지

2024년 U-리그 조 편성에서 제외되면서 해체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야구부 출신 선수[편집]

학번
성명
16
김정진[A], 김태양[A], 박승환[A], 박종복[A], 배인교[A], 송지호[A], 양건국[A], 양진하[B], 엄재혁[A]
17
김영환[B], 김현준[A], 김희용[A], 이동찬[A], 이용민[A], 조율현[A]
18
김수홍, 박성범, 손남우, 윤정섭, 이상민, 이상민, 조동성, 한김미르, 홍승기[16]
19
김경민, 김세환, 박상우[B], 신순곤
20
성영래[B], 신주환, 오진우[B], 정훈석, 최하람

[A] 1.1 1.2 1.3 1.4 1.5 1.6 1.7 1.8 1.9 1.10 1.11 1.12 1.13 한중대 폐교 후 특별 편입.

[B] 8.1 8.2 8.3 8.4 8.5 강릉영동대에서 편입.

[16] 제주관광대에서 편입.

 
공의식
孔義植
출생
국적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대한민국
학력
포지션
투타
프로 입단
소속팀
지도자
한중대학교 야구부 감독

1. 개요[편집]

KBO 리그에서 뛰었던 前 프로야구 선수.

 
 

2. 선수 경력[편집]

1993년태평양 돌핀스에서 프로 데뷔 후 1997년 시즌 초까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다.

MLB에 대한 인지도가 적었던 1990년대 초반 당시에도 MLB 선수에 필적할 정도로 덩치가 워낙 컸고 배트에 공만 맞혔다 하면 외야수들이 제자리에서 그 공을 바라보다 홈런이 될 정도로 파괴력이 만만찮았던 선수였다. 특히나 그가 소속됐던 태평양 돌핀스는 김경기, 김동기를 빼고는 이렇다 할 거포가 없었고 공만 배트에 맞힌 다면 너무나 손쉽게 펜스를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당시 홈구장의 규모가 협소했기에 팀의 고질적 거포 부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선수로 기대를 받았다.

실제로 현대 유니콘스의 첫 시즌이었던 1996년 시범경기 당시 반짝 활약을 하며 정규시즌에 대한 기대를 키웠으나 정작 정규시즌에 가서는 배트에 공을 맞히지 못하며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2] 이 때문에 인천 야구팬들은 그를 의식한 선수라고 평하기도 했다.

결국 정확도 높은 좌타자를 찾던 현대가[3] 타격왕 출신의 김광림을 받는 조건으로 팀 동료였던 강영수와 함께 매물로 내놨고 결국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된다.

이후 1997년 은퇴하여 은퇴 후 모교인 충암고 감독, 한중대 감독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유원대 감독으로 있다. 한중대 야구부는 2018년 폐교와 함께 해체됐으며 유원대도 2024년 U리그 조편성에서 제외되면서 해체로 추정되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과거[4] 주간야구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도 있었으며 팀 동료 염경엽은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다.

3. 연도별 성적[편집]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1993
61
125
.168
21
8
1
4
13
15
4
1
50
.302
.344
1994
1군 기록 없음
199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1996
40
70
.214
15
1
1
3
8
8
2
2
26
.309
.38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1997
67
119
.202
24
3
0
5
21
12
4
2
32
.307
.353
KBO 통산
(3시즌)
168
314
.191
60
12
2
12
42
35
2
5
108
.305
.357

4. 관련 문서[편집]

[1] 1989학번

[2] 실제로 시범경기에서는 웬만큼 팀 주전 라인업을 꿰고 있던 팬들도 잘 모르던 선수들이 갑툭튀하면서 빼어난 활약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주전 선수들이 전력을 점검하면서 설렁설렁 뛰는 사이에 1.5군 내지는 2군 선수들이 코칭스태프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미친듯이 활약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그 1.5~2군 선수들이 상대하는 투수 or 타자도 대부분 비슷한 부류의 선수들이었고 시즌 개막 이후 엔트리에 들어도 1군 주전 선수들이 등장하면 귀신같이 제자리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 팀이 시범경기 최강팀인 이유는 괜히 있는게 아니다.

[3] 이 당시 현대에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던 포지션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공수가 겸비된 2루수였고 또 하나는 컨택 능력이 뛰어난 좌타자였다. 윤덕규가 있기는 했으나 당시로서는 퇴역 대상으로 분류될 정도로 나이가 많았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다만 대신 데려온 김광림이 윤덕규보다 2년 선배라는 점은 함정. 2루수 자리는 OB 베어스에서 데려온 이명수로 채웠으나 이명수도 나이가 들기는 매한가지였고 결국 LG 트윈스에서 박종호를 데려오고 나서야 이 문제가 풀린다.

[4] 1993년 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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