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tt-body-page" class="layout-aside-right paging-number">
본문 바로가기
야구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No.77 감독 김인철

by 아기 자동차 2024. 9. 13.
반응형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No.77
김인철
金寅哲 | In-Chul Kim
출생
국적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대한민국
학력
포지션
투타
프로 입단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2~2004)
한화 이글스 (2005~2007)
지도자
프런트
한화 이글스 전력분석원 (2008~2014)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팀 과장 (2015~2017)

1. 개요[편집]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전직 야구선수이자 현재는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 등번호는 67번(1991~1994) - 13번(삼성) - 40번(KIA, 한화)

2. 선수 경력[편집]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투수로 데뷔 했던 시절 (출처 : 포토로)
마지막의 투수 활약 시절 (출처 : 포토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타자 전향 시절 (출처 : 포토로)
(출처 : 포토로)

원래는 투수로 입단했다. 선발투수로도 활약했다. 1992년에는 규정이닝을 채우며 8승을 거뒀고[1] 당시 감독이 김성근임이면서 볼넷을 저렇게 내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왔단 것으로 보면 구위는 매우 훌륭했던 것으로 봐야할 듯.볼넷이 더 적었다간, 큰일 날 뻔했다.

이후 투수로써는 별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어깨부상으로 인해 2000년 타자로 전향했다. 투수 통산 성적은 117경기 등판 15승 22패 평균자책점 4.56.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KIA 타이거즈 시절 (출처 : 포토로)
한화 이글스 말년 선수 시절 (출처 : 포토로)
 

이후 2002년 롯데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KIA로 재트레이드되는 등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했고, 2004 시즌 후 KIA에서 방출되면서 은퇴를 생각하고 있던 중, 그를 눈여겨 보고 있던 한화의 김인식 감독이 그를 부르며 한화에 입단하게 되었다.

한화 유니폼을 입은 2005 시즌은 대타요원으로 시즌을 시작하였는데 1호포를 대타홈런으로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개막 후 4월 한달동안 6홈런을 때리며 잠깐 홈런 1위를 한 적도 있을 정도. 이 활약으로 한때 지명타자 혹은 좌익수로 선발출장하기도 했는데 이후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최종적으로는 두 자리수 홈런에 만족해야 했다. 어쨌거나 10홈런을 기록하면서 김성한 이후 10홈런-10승을 달성할뻔 했던 장본인. 이때까지만 해도 철밥통 소리 들을 정도로 썼던 것도 아니고 대타요원으로 시작했다가 본인이 잘해서 주전을 꿰찼던 거라 그리 욕 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때 이후로 성적이 하락하여 2006년~2007년에는 신인 외야수들의 앞길을 막는 존재로 인식되어 이도형 등과 함께 한화팬들에게 김인식의 양아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다. 그 와중에 끝내기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는데, 2007년 8월 11일 SK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SK의 공격 때 주자 1루에서 히트앤드런이 걸렸고 1사 1,3루의 위기가 될 상황이었는데 좌익수이던 김인철이 포구후 바로 송구를 하지 않고 머뭇거리던 틈을 타 3루주자인 정근우가 홈인하면서 어이없게 끝내기 패배(즉 1사 1루에서 힛앤런이 걸렸는데 단타로 1루주자가 홈까지 접전상황도 만들지 않고 홈으로 들어와 경기가 끝나버린 상황이다)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2007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며 은퇴했다.

3. 은퇴 후[편집]

현역 은퇴 후에도 자신의 마지막 현역 팀인 한화 이글스와의 관계를 유지했고, 한화의 원정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다가 스카우트팀 과장으로 인사이동되었다. 그 후 2017년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역 야구부인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2021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6강, 2023년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 8강[2], 2023년 전국체육대회/야구 진출[3] 2023년 청주고의 현 성적은 13승6패이다.

4. 여담[편집]

  • 현역 시절에는 항상 익살스러운 행동이 주특기. 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듯 삼성 시절 삭발을 한 적이 있다. 우승경력은 없으며 1993년, 2001년, 2006년 준우승으로 콩라인 가입.
  •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71년생 동갑내기이자 2017년 당시 삼성 감독이었던 김한수와도 얼굴형이 조금 닮은 편이다.
  •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이지만, 선수 생활 마지막 3년을 보내게 해 준 구단, 선수 은퇴 후에도 원정 젼력분석원으로 불러준 구단 또한 한화 이글스이기에 한화 구단의 연고지인 대전-충청 지역을 제 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 김성근 감독과는 1991~92년 삼성 1군에서, 2000년 삼성 2군에서 함께한 바 있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5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는데, 김성근 감독 부임 후로 일은 많아졌지만 팀 성적 향상에 확신을 갖고 본인 포함 프런트 직원들 모두가 성실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해당 기사
  • 2017년 7월 청주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4] 나온 기사에 따르면 은퇴 후 한화의 전력분석원, 스카우트를 맡을 때도 틈틈이 공부를 하는 '공부하는 야구인'이었으며, 현재는 대학원 입학을 위해 공부 중이라고 한다. 나중에 꿈은 대학 강단에 올라서 제대로 된 야구인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또한 심판, 기록원, 스카우트 등 야구계 전반에서 활동할 이들에게 체계적인 야구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 연도별 성적[편집]

  • 붉은 글씨는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0
3
3⅓
0
0
0
-
0.00
2
0
1
1
0
0
0.55
1991
16
33
1
1
0
0.500
7.91
41
7
23
17
30
29
1.85
1992
28
128⅔
8
7
1
0.533
4.20
98
10
112
(1위)
88
73
60
1.57
1993
1군 기록 없음
1994
13
28⅔
0
2
2
0.00
5.02
35
1
16
16
17
16
1.71
1995
21
62⅓
1
5
0
0.167
4.91
59
5
37
23
41
34
1.41
1996
21
83
5
7
1
0.417
4.01
85
5
56
26
42
37
1.55
1997
15
34
0
0
1
-
3.44
30
3
23
11
16
13
1.41
KBO 통산
(8시즌)
117
373⅓
15
22
5
0.405
4.56
350
31
268
182
219
189
1.55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92년
1완투
0완봉
1995년
1완투
0완봉
1996년
1완투
0완봉
KBO 통산
3완투
0완봉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43
87
.218
19
1
2
3
13
20
5
7
0.379
.277
2001
11
11
.091
1
0
0
0
0
2
1
1
.091
.167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37
51
.235
12
4
0
1
6
5
1
1
.373
.250
2003
37
74
.230
17
1
0
2
6
14
2
2
.324
.293
2004
3
5
.000
0
0
0
0
0
0
0
0
.000
.167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103
262
.275
72
16
0
10
39
46
8
2
.450
.330
2006
69
88
.227
20
3
0
0
6
9
3
2
.261
.292
2007
77
103
.204
21
2
1
2
8
16
0
0
.301
.241
KBO 통산
(8시즌)
381
681
.238
162
27
3
18
78
112
20
52
.366
.291

6. 관련 문서[편집]

[1] 피안타율은 훌륭한 수준이지만 그게다 볼넷이랑 바꿔치기한게 문제였다.

[2] 우승후보 부산고를 16강전에서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으나 8강전에서 덕수고에 패했다.

[3] 10년만의 출전이었다. 충북 대표로 주로 세광고등학교 야구부가 출전했다.

[4] 장정순은 상습 폭행건으로 경질되고 심정진이 새로 부임했는데, 과거 폭력전과가 있어서 해임되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