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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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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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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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라원, 김경현, 김승민, 김응준, 조정호, 황동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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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김찬빈, 성일국, 안인원, 이범진, 장인혁, 최승민, 최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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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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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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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간 이후[1] 1년 선배였던 선동열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였고[2] 2학년이던 1980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후 1982년 건국대에 입학, 1982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에 출전해 팀은 준우승했지만 우수투수 타이틀을 가져갔다. 1983년 추계리그에도 출전해 최종전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건국대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졸업 이후 198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해태 타이거즈에 1차 지명을 받았다.[3]
1986년 신인으로 데뷔한 후 선발 중무리 가리지 않고 등판해 10승을 달성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그해 7월 27일에는 청보전에서 연장전까지 완투 끝에 무승부라는 이색적인 기록을 만들었다.[4]
신인 시즌부터 선동열-이상윤-문희수에 이은 4선발로 주로 뛰었지만 마무리 투수나 패전처리 투수도 맡는 등 전천후 스윙맨으로 등판하며 마당쇠다운 활약을 펼쳤다. 방수원 - 차동철 - 송유석 등 1980년대 해태 왕조의 마당쇠 계보 중 한 명이었다. 참고로 정확히 차동철이 해태에서 활약했던 시기는 송유석이 개화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나 송유석과는 달리 원래 보직이 선발이었기 때문에 전문적 노예라 보기에는 좀 그런 면이 있다. 어쨌든 이런 전천후적 등판으로 인한 혹사는 부상과 함께 1989년 중간계투 전향을 불러오게 된다.
해태 타이거즈 소속으로 출전한 한국시리즈에서 2승(1986년 4차전, 1987년 1차전) 1패(1986년 2차전), 2세이브(1986년 3차전, 1987년 3차전)를 기록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방수원이 술회하기를 방수원이 선동열과 차동철에게 슬라이더를 전수했고 두 선수들은 더욱 변화구를 갈고 닦아 실전에서 요긴하게 써먹었다고 한다.
트레이드 초 백인천 감독 재임기에는 부상에다가 감독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출장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5] 그래도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팀이 우승하면서 해태 시절에 이어 5년 연속으로 우승반지를 껴보게 되었다.
이후 이광환 감독이 부임하며 다시 한 번 활약하게 되는데, 이 시기가 조금 더 전문 마당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광환 감독 체제 하에서 차명석, 김용수 같은 전문 셋업/마무리 체제가 생기는 등, 투수 분업화가 나타났지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엉성한 편이었다. 따라서 전천후 역할을 해 줄 투수가 필요했고, 차동철은 많은 이들이 피하는 이 전천후 투수를 맡아 때로는 승리조, 때로는 패전조, 때로는 대체선발까지 맡는 등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1997년에는 노쇠화 여파 및 부상으로 인해 많이 등판하지 못했으며 시즌이 끝나고 LG에서 방출되며 은퇴했다.
은퇴 후 모교인 건국대의 코치로 선임되었고, 2011년에 감독으로 승진하였다. 2013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 건국대학교 야구부를 우승시켰다. 해태 입단 동기들인 이건열과 장채근은 동국대와 홍익대 감독이며 2022년까지도 세 명 모두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2022년을 끝으로 정년 퇴임하였다. 이후 2023년 9월 1일 한국골프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 KBO 리그 선수 중 5년 연속 우승을 맛본[6] 유일한 선수다. 해태 타이거즈가 1986년~89년 4년 연속으로 우승하던 시절에 모두 엔트리에 들었고, 1990년 곧바로 LG 트윈스로 이적해 팀이 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후 1994년에 LG가 또다시 우승에 성공하며 커리어 전체 12시즌 동안 무려 6개의 우승 반지를 껴보게 되었다.
- 심재원과 함께 최초로 2개팀에서 우승을 맛본 선수다.
- 비록 선동열에 가려 2인자 느낌이 강한 선수였지만, 광주일고 2학년 시절부터 박노준, 김건우가 주축이 된 선린상고, 광주상고, 천안북일고를 차례로 격침시킨 대물투수였다. 태산에 가리운 투수 차동철
- 여러 기록을 만들어 준 허용투수이기도 하다. 장종훈의 화려한 타격 역사를 열어준 이가 차동철인데 그가 1987년 4월 14일 대전 해태전에서 친 프로 첫 안타가 차동철의 공을 받아친 2루타였다. 또 역대 KBO 역사에 단 한 번뿐인 연타석 만루홈런 기록도 차동철이 완성시켰는데 1997년 5월 4일 대구 삼성전 2회말 때 정경배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면서 대기록이 완성됐다.
- 스플리터를 매우 잘 던져서, 1987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스플리터를 던진 게 부정투구로 오인받기도 했다. 후에 차동철은 이 스플리터를 문희수에게 알려줬고 문희수 또한 이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사용했다.
- 야구인들 중 축구 실력이 상당히 뛰어났다고 한다.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7]
- 친화력과 소통력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한다.
- 1992년 타석에 한 번 들어선 적이 있다. 그리고 아웃.
- 아들 차상현은 매송중학교 시절 유소년 국가대표로 뽑혔고 2021년 현재 야탑고 3학년이다.[8] 야탑고 졸업 시점에서는 지명을 받지 못하면서 강릉영동대학교 야구부로 진학했다.
- 해태에서는 이기는 야구를, LG에서는 지도자의 기본을 배웠다고 한다.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1986[9]
|
33
|
131
|
10
|
4
|
3
|
0
|
0.714
|
2.82
|
134
|
4
|
29
|
35
|
46
|
41
|
1.21
|
|
1987
|
35[10]
(3위)
|
159⅔
|
9
|
11
(5위)
|
0
|
0
|
0.450
|
3.16
|
157
|
8
|
44
|
49
|
65
|
56
|
1.23
|
|
1988
|
32
|
146
|
10
|
6
|
1
|
0
|
0.625
|
3.33
|
156
|
11
|
31[11]
|
45
|
68
|
54
|
1.21
|
|
1989
|
14
|
40
|
0
|
4
|
0
|
0
|
0.000
|
4.28
|
48
|
4
|
0
|
8
|
22
|
19
|
1.70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1990
|
16
|
49
|
3
|
3
|
0
|
0
|
0.500
|
5.51
|
56
|
3
|
21
|
7
|
30
|
30
|
1.55
|
|
1991
|
3
|
3⅔
|
0
|
0
|
0
|
0
|
-
|
14.73
|
9
|
1
|
2
|
0
|
6
|
6
|
2.73
|
|
1992
|
19
|
28
|
2
|
1
|
4
|
0
|
0.667
|
4.18
|
29
|
1
|
12
|
8
|
14
|
13
|
1.43
|
|
1993
|
32
|
59
|
5
|
4
|
4
|
0
|
0.556
|
3.20
|
52
|
5
|
16
|
28
|
21
|
21
|
1.14
|
|
1994
|
34
|
59
|
2
|
5
|
7
|
0
|
0.286
|
2.59
|
75
|
5
|
24
|
29
|
24
|
17
|
1.59
|
|
1995
|
46
(5위)
|
54⅔
|
4
|
2
|
4
|
0
|
0.667
|
2.80
|
52
|
1
|
16
|
23
|
24
|
17
|
1.23
|
|
1996
|
48
|
77⅔
|
1
|
6
|
4
|
0
|
0.143
|
5.21
|
90
|
4
|
34
|
33
|
51
|
45
|
1.52
|
|
1997
|
11
|
11
|
0
|
0
|
0
|
0
|
-
|
14.73
|
22
|
4
|
6
|
0
|
19
|
18
|
2.27
|
|
KBO 통산
(12시즌)
|
323
|
818⅔
|
46
|
46
|
27
|
0
|
0.500
|
3.70
|
880
|
47
|
258
|
265
|
390
|
337
|
1.34
|
완투, 완봉 기록
|
||
연도
|
완투
|
완봉
|
1986년
|
3완투
|
2완봉
(8위)
|
1987년
|
7완투
|
2완봉
(8위)
|
1988년
|
5완투
|
3완봉
(2위)
|
KBO 통산
|
15완투
|
7완봉
|
-
[1] 1978년 전남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그 해 말 해체되자 광주일고로 전학갔고 이 과정에서 1년을 유급했다.
[2] 둘 다 1963년 1월생이라 빠른 생일에 속해 1962년생들과 같이 입학했지만, 차동철이 고교 시절 1년 유급하는 바람에 1년 선후배가 됐다. 선동열은 고려대 81학번이고, 차동철은 유급하여 동갑내기들과 같이 졸업해 82학번.
[3] 드래프트 입단 동기로 김정수, 장채근, 이건열, 김평호, 신동수, 김대현이 있다. 송유석은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4] 청보 쪽 투수도 연장 완투였다. 투수는 김신부.
[5] 1990년, OB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호투한 차동철을 감독이 2차전에서도 올리려는 것을 거부하면서 미움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6]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이상 해태, 1990년 LG.
[7] 이종범 역시 야구인들 중 축구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8] GS 칼텍스 배구감독과 동명이인이다.
[9] 커리어하이
[10] 선발등판 3위(23경기)
[11] 사구 4위(10개), 폭투 4위(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