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투박하지만 자랑스러운 나의 귀농 친구 방문기
일러스트=김영석
15년 넘게 한 가지 일을 열정적으로 해온 친구가 1년 전, 깜짝 선언을 했다. 하던 일과 서울살이를 다 정리하고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거였다. 친구의 새로운 도전은 응당 응원해야 한다고 여겼기에 “어머, 파이팅!” 하고 말았지만, 이윽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곱씹게 됐다.
친구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다. 매일 새벽에야 잠들고, 아침 잠에서 깨기 위해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가 필요하다. 밤의 유흥을 즐기며, 핫플이라는 핫플은 다 꿰고 있을 만큼 유행에 민감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궁금할 땐, 친구가 뭘 입고 다니는지 보면 된다. 그때그때 나오는 신곡도 다 알고 있어서, 친구의 차에 탈 때마다 생전 처음 듣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그런 친구가 농촌에 가서 산다고? 나는 묻고 싶었다. “너 벌레 싫어하잖아, 괜찮아?” “거긴 젊은 사람들이 적어서 심심할 텐데?” “그리고 거기 *타벅스 없지?”
몇 개월 뒤, 친구는 진짜로 장흥에 전입신고를 했다. 방치되었던 오래된 농가를 개조해 신혼집으로 만들고, 청년 창업농이 되어 블루베리를 재배하게 됐다. 친구는 그간의 일들을 소셜미디어에 살뜰히 올렸는데, 그걸 보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것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인가. 내 친구는 김태리인가(아님). 너무 생소하잖아, 이런 삶.
그래서인지 친구의 새 거처를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서적인 거리로 따지자면 집이 완공되자마자 버선발로 달려갔어야 하는데, 나야말로 뼛속까지 도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집 안에 하루살이 한 마리만 들어와도 난리 치는 인간.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작정 두려워지는 인간. 친구에게 그 동네에 *타벅스가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건, 내가 그걸 마셔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제껏 전원생활을 꿈꾼다는 사람을 단 1초도 이해한 적이 없다. 겁 많고 변화를 싫어하는 나는 태어난 도시에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다.
하지만 친구가 보고 싶고, 친구가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장흥까지 가는 기차가 없어 나주역에 내리면 친구가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오랜만의 여행. 오랜만의 만남. 기차가 출발하기 전부터 마음이 설렜다. 두 시간쯤 달린 기차가 나주역에 섰을 때, 출입구 앞에는 내가 도착하는 모습을 열심히 사진 찍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귀농한 신혼부부는 현지에서도 희귀한(!) 존재였기에, 두 사람은 어느새 동네에서 유명인이 되었다. 그들의 귀농 생활은 지역 방송국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고 여러 매체와 인터뷰도 했다. 그야말로 ‘촌플루언서’가 된 것이다. 친구는 뭐라도 쥐여 주려 하고, 선뜻 도와주려는 이웃들 사이에서 농촌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익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새 삶을 시작한 친구가 먼 곳에서 행여나 외롭진 않을지 걱정되었는데, 다양한 환대를 누리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친구의 삶은 내가 그려온 아늑한 전원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친구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강도 높은 노동을 이어갔다. 건강하던 두 손에는 관절염을 얻었다. 옷이 땀에 푹 젖도록 일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실신하듯 잠들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여름에는 푹푹 찌는 하우스 안에서 작업하다 숨 넘어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매 순간 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하는 삶까지 그의 몫이 되었다. 실제로 내가 장흥에 머물던 시기에는 연일 폭우가 쏟아져 친구 동네에도 비 피해가 만만찮았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 손수 삼시 세끼를 차려주고, 좋은 경치를 보여주려 애쓰던 모습에 나는 서울에서나 여기서나 친구한테 신세만 지는구나 싶어 머쓱했다. 친구의 손길이 안 닿은 데 없는 집의 대청마루에 매일 우두커니 앉아서 비 내리는 풍경, 바람이 부는 소리, 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추억했다.
여행 마지막 날, 친구는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는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테라스 자리에 앉자마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비 갠 후 화창한 하늘 아래 푸른 바다와 삼각형 섬이 둥둥 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뇌리에 박혀 있는 풍경은 다름 아닌 친구의 손이다.
만날 때마다 알록달록한 네일아트로 조약돌처럼 빛나던 친구의 손톱은 어느새 맨손톱이 되어 있었다. 틈날 때마다 핸드크림을 정성스레 바르던 뽀얀 손은 어느새 일 잘하는 농사꾼의 손을 하고 있었다.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문득 할 말을 잊었다. 볕에 그을려 한껏 투박해진 손이 그간의 노고를 말해주는 것 같아 울컥하면서도 대견했다. 도시에서의 네 손보다 지금 손이 더 멋져. 그저 대단하고 자랑스러워.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느꼈다. 조만간 여길 다시 오게 될 것 같다고. 그때는 두 팔 걷어붙이고 농사일을 돕겠다고. 물론 도움은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