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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클라이밍
지난봄이었다. 집 근처에 있던 큰 마트가 문을 닫았다.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식료품점이었다. 경쟁에서 밀려났거나 어떤 사정이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폐업한 자리에서 꽤 큰 내부 공사가 시작됐다. 업종이 바뀐다는 뜻이었다.
마트가 나간 공간에 무엇이 들어올지 궁금했다. 얼마 전에 그 앞을 지나다 깜짝 놀랐다. 통유리창 안에서 많은 사람이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실내 클라이밍장이었다. 벽을 타는 소비자는 남자 못지않게 여자가 많아 보였다. 자연 암벽등반이 ‘매운맛’이라면, 인공 시설물을 오르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순한맛’이리라. 산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날씨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암벽 여제' 김자인 선수. /오종찬 기자
실내 클라이밍은 높은 집중력과 효율적 움직임을 요구하는 전신운동이다. 암벽 타는 모습을 촬영해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자기만족 트렌드로도 인기라고. 2023년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월드컵 리드 부문에서 우승하면서 출산 후에도 금메달을 목에 건 ‘암벽 위의 발레리나’ 김자인 선수의 활약도 있었다. 마니아층이 중심이던 스포츠 클라이밍은 그룹 AOA 출신 배우 설현, 가수 겸 배우 비비, 배우 전종서 등 유명인을 통해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이제 영화관에서도 사람들은 수직의 벽을 오른다. 서울 종로3가에 있는 CGV피카디리1958은 상영관 두 곳을 터 스포츠 클라이밍 짐 ‘피커스(PEAKERS)’를 만들었다. 구로와 신촌에도 ‘영화관 속 암장(巖場)’이 생겼다. 들어가면 빠른 비트의 팝이 흘러나온다. 영화관을 개조해 층고가 높고 시원시원하다. 전철역과 연결돼 접근성이 좋고 내부를 인스타그램 감성으로 잘 꾸며놓았다.
실내 클라이밍
피커스 암장의 높이는 5.7m. 경사가 127도에 이르는 벽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홀드가 붙어 있는데 색깔로 난이도를 가늠한다. 빨간색이 가장 쉽고 회색이 가장 어렵다. 바닥에는 두툼한 안전 매트가 깔려 있다. 클라이밍은 날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인생을 닮았다. 이걸 어떻게 올라가나 싶지만, 발 디딜 곳을 찾게 되고, 더 높은 곳으로 손을 뻗게 되고, 어느새 목표 지점에 도착해 숨을 고른다.
마트였던 실내 클라이밍장에서 그날 보았다. 손에 하얗게 초크 가루를 묻힌 젊은 여자가 ‘어떤 코스로 갈까’ 구상하는가 싶더니 문제를 향해 몸을 던졌다. 날렵하게 벽을 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