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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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No.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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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관
金承管 | Kim Seung-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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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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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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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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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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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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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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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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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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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1995~2004)
롯데 자이언츠 (200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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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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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8~2014)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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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내야수이자, 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대구상고 졸업 후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당초 고려대학교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어려운 집안 형편 등으로 인해 계약금 9,500만원에 연고 팀 삼성과 계약했다. 대구상고 재학 시절에는 동갑내기 친구였던 경북고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좌승엽 우승관' 으로 불리던 라이벌이었다. 당시 투수였던 이승엽이 팔꿈치 부상과 어깨 혹사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자, 그가 "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쳐요"라고 말을 했을 뿐인데… 김승관도 고2때까지는 마운드에 서기도 했었다. 당시 에이스는 1년위 선배 김민우였으나 확연히 나은 투수는 아니었다.
정작 이승엽은 유명해지고, 본인은 오히려 듣보잡이 되고 말았다.
삼성 라이온즈에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따라다니던 딱지는 2군 홈런왕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좋아해 온 팀이자 고향 팀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왔지만, 2004년 7월 12일 투수 노장진과 함께 외야수 김대익, 투수 박석진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2006년 7월 16일에는 친정 팀 삼성을 상대로 투수 임동규에게 선제 결승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롯데의 스코어 14:0의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고, 오른손 강타자로 새롭게 떠오른 이대호 등에게 밀려 2007년 10월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박영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모교인 상원고등학교의 타격코치로 부임했으며, 잠시 투수코치를 겸하기도 했다.
2015 시즌을 앞두고 롯데 자이언츠의 드림팀(3군) 타격코치로 합류했다.
이후 롯데에서 이런저런 보직을 맡다가, 2017년 시즌 초 타격 부진으로 인해 훌리오 프랑코 타격코치와 자리를 맞바꿔 1군 타격보조코치로 올라왔다. 시즌 후반기에 메인 타격코치였던 김대익이 외야수비코치로 보직이 바뀌자, 1군 메인 타격코치로 보직 변경됐다. 시즌 막판에는 동갑내기 친구 이승엽의 사직구장 은퇴 투어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타자 친화적 구장인 사직구장을 홈으로 쓰고 극타고투저 시대에서 지독한 스몰볼을 추구하고 레벨스윙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팀들은 발사각도 연구까지 하면서 타고투저 시즌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만 롯데는 전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롯데의 대표적인 느린 발을 가진 최준석, 강민호가 전력에서 이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살타가 리그 2위이다.
2018년도 타고투저의 근본적 원인인 공인구 덕분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내었다. 그러나 2019시즌 공인구가 바뀜과 동시에 팀 타격은 최하위로 머물러 있다.
게다가 2019년 6월 13일 잠실 야구장 LG 트윈스 12차전이 끝나고 불명예 신기록을 세웠다. 1986년 이후 33년만의 최악의 굴욕수준이다. 양상문 감독도 책임이 있지만 김승관 코치의 책임도 있다는건 분명하다. 이 정도면.. 알지?
2019년 6월 15일 손인호 코치랑 직함이 바뀌었지만 별 차 없고 이후 양상문 감독이 중도사퇴하고 수석코치인 공필성 대행이 남은 후반기 시즌을 이어서 마무리 지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공필성 대행이 코치진 이동을 하여 살아남았지만 답답할 따름..
2019년 10월 7일 성민규 단장 체제하에 재계약을 안하는게 확정되며 롯데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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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에서 나온 후 2020년 감독 공개경쟁 모집을 통해 모교인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선임됐다.
감독 부임 이후 2020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4강에 올랐다.[6] 2023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도 4강에 올랐다.[7]
- 1군에서의 통산 홈런 기록은 단 3개였는데, 삼성에서 1개, 롯데에서 2개를 기록했다. 그것도 1군 데뷔 후 첫 홈런은 롯데로 트레이드되기 바로 전날이자 데뷔 10년차이던 2004년 7월 11일에야 기록했다.
- 이승엽과 일화는 이 링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이승엽에게 쓰는 편지 이 편지를 보면 이승엽과 상당히 친하다.
- 항상 이승엽을 따라다니다가 본인이 스스로 무덤을 파 버린 비운의 천재. 다만 당시 고교 코치들 말에 따르면, 이승엽은 부드러운 스윙을 휘두르는 반면, 김승관은 뻗어나오는 거친 스윙이라서 절대 프로에서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 그의 2군 통산 커리어를 능가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고 하는데 2군 통산 557경기에 출전하여 87홈런, 377타점, 571안타, 353사사구, 타율 3할 3리를 마크해 KBO 퓨처스리그에 큰 획을 그었던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KBO 퓨처스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타이틀(타율 1위 1번, 타점 1위 4번, 홈런 1위 4번으로 총 9번)을 획득한 선수다.
- 미혼으로 알려져 있다.
- 200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우승 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삼성에서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해서 2002 시즌에 1군에서 1경기라도 뛰었던 선수들에게도 우승반지를 지급한 듯 보인다.
역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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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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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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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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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수
|
타율
|
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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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1995
|
6
|
4
|
.000
|
0
|
0
|
0
|
0
|
0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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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23
|
68
|
.279
|
19
|
11
|
0
|
0
|
10
|
7
|
0
|
|
1997
|
17
|
17
|
.118
|
2
|
0
|
0
|
0
|
1
|
1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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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6
|
8
|
.250
|
2
|
0
|
0
|
0
|
0
|
0
|
0
|
|
1999
|
20
|
20
|
.000
|
0
|
0
|
0
|
0
|
0
|
0
|
0
|
|
2000
|
1군 기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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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
7
|
6
|
.000
|
0
|
0
|
0
|
0
|
0
|
0
|
0
|
|
2002
|
12
|
11
|
.182
|
2
|
0
|
0
|
0
|
0
|
1
|
0
|
|
2003
|
1
|
1
|
.000
|
0
|
0
|
0
|
0
|
0
|
0
|
0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2004
|
59
|
126
|
.222
|
28
|
4
|
0
|
2
|
14
|
13
|
0
|
|
2005
|
14
|
14
|
.143
|
2
|
0
|
0
|
0
|
0
|
1
|
0
|
|
2006
|
50
|
70
|
.286
|
20
|
5
|
0
|
1
|
8
|
10
|
0
|
|
2007
|
5
|
6
|
.000
|
0
|
0
|
0
|
0
|
0
|
0
|
0
|
|
KBO 통산(12시즌)
|
220
|
351
|
.214
|
75
|
20
|
0
|
3
|
33
|
34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