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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by 아기 자동차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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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Daegu Sangwon High School)
창단
소속 리그
대구경북권
감독
우승 기록[1]
12회
홈페이지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2회(1973, 93)
5회(1974, 76, 78, 88, 2009)
2회(1998, 2020)
6회(1950, 70, 77, 99, 2011, 2015)
6회(1962, 66, 68, 69, 98, 2000)
3회(1971, 78, 2010)
2회(1973, 98)
3회(1974, 2015, 2024)
3회(1981, 90, 2023)
2회(1973, 74)
1회(1975)
5회(1971, 80, 97, 20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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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1988년,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모자를 쓰지 않은 학생이 양준혁이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와 함께 대구광역시의 명문 야구부로 불리는 학교.

2. 연혁[편집]

2.1. 경북지역의 최강자(1928~1945)[편집]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1928년 3월[3] 대구상업학교 시절에 생겼던 팀으로 다른 일제강점기에 생긴 팀에 야구부가 유명무실해진 것과 달리 비록 팀은 약했을지라도 야구부의 명맥은 꾸준히 이어간 팀이다. 그래서 여타 팀들과 다르게 80년 넘는 역사가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 팀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창단 당시에는 팀원 대다수가 일본인 학생들으나 조선인 학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최초 창설 당시 기록상으로 확인되는 인물들은 편순윤(片順潤), 표문철(表文哲), 오명오(吳命五) 등이 외야수로 활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창단 첫해였던 1928년 5월 24일에 대구춘계쟁패전에서 대구실업을 꺾고 첫 우승을 달성했으며, 창단 첫해에는 은근 콩라인 기질이 있었는데 1929년 제9회 조선중등학교대회겸 제15회 전국중등우승대회 조선예선전[4]에서 평양중에게 패배(5:0)하며 준우승, 10월 12일 제3회 조선신궁중등학교대회에서도 경성사범에게 패배(6:4)하며 준우승.

그러나 이듬해인 1930년에는 그들의 해로 만들었다. 제16회 고시엔 조선예선에서 우승하며 조선대표로 고시엔에 출전하기도 했다. 고시엔 진출 당시 1회전에서 요나고(米子)중학을 4-0으로 격파하고 2회전에 진출했으나 마쓰야마(松山)상업에 2-4로 패해 탈락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18일에 열린 제4회 조선신궁중등학교대회에서는 경성중을 5:4로 꺾은 후 평양중을 꺾고(3:2)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5] 1931년에는 용산중(4:1), 경성산업(3:2)을 차례로 꺾고 제5회 조선신궁중등학교대회를 재패했다.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대구 상업은 1935년에 다시 기지개를 폈는데 제15회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신의주상업에게 22-3로 대패하며 무릎을 꿇었고 1936년 제16회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도 결승에서 인천상업에게 8-4패배하며 고시엔 진출에 실패했다. 제17회와 18회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는 모두 4강에 올랐으나 떨어졌다.[6] 그리고 1941년 개최된 마지막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도 4강까지 진출했으나 용산중에 16-12로 아쉽게 탈락하며 4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대구상업은 치열했던 고시엔 예선[7]을 뚫고 심심찮게 결승과 4강을 오가며 경북지역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해방 후에도 전통은 이어져서 1950년 청룡기에서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학교측에서는 성적이 나올리가 없다는 이유로 출전을 반대했지만 김종경 당시 대구상고 감독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출전, 결승전에서 에이스 어지홍[8]을 앞세운 동래고를 2:1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우승을 차지했다.‘돌아오지 않은 학도 야구소년들’ 그러나 그들이 첫 우승을 달성하고 바로 직후에 터진 한국전쟁으로 인해 우승의 영광은 전쟁의 포연 속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2.2. 영광의 시대(1960~1973)[편집]

대구상업고등학교 야구부의 강세는 1960년대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1962년 정동진이라는 걸출한 포수를 앞세워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신호탄으로 이 번에는 류영수 투수와 우용득 포수의 콤비를 앞세워 1968년과 1969년 다시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 번에 걸쳐 이어진 준우승의 한은 이들이 모두 졸업한 1970년에 풀리는데 청룡기 우승으로 20년 만에 서울 메이저 대회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이대로면 대구상고 야구부의 독주 체제가 열리는가 싶었지만 하필이면 동향 라이벌 경북고가 득세하면서 대구상고의 독주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경북고는 1971년 전국대회 전관왕을 달성하면서 고교야구 전성시대의 최강자로 등극했고 대구상고도 그들의 라이벌이라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며 강태정 감독의 지휘 아래 장효조와 김한근을 필두로 한 막강한 전력을 바탕으로 1973년 고교야구 3관왕을 달성하면서 그들이 한 시대를 지배할 가치가 있는 팀임을 충분히 증명했다. 그리고 1974년 세 차례 결승에 올라 봉황대기에서 우승에 성공하며 전년도의 영광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들의 영광어린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은 김시진이만수였는데 불행히도 이 둘이 배터리를 맞출 때는 성과가 영 좋지 않았고[9] 김시진이 졸업한 1977년에 박영진을 앞세워 다시 청룡기 우승을 차지하고, 1978년 양일환이 에이스로 뛰며 대통령배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영광스러웠던 시대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시기 대구상고의 영광을 함께 만든 이들은 훗날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서 뭉쳐서 혁혁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80년대의 대구상고는 무려 양준혁김태한을 배출하는 등 인재는 나쁘지 않지만 팀 성적은 우승과 인연이 없는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고 결국 1980년대에는 한 차례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 보내게 되었다.

2.3. 중흥기[편집]

1993년 고교 무대에서는 이승엽과 쌍벽을 이뤘다는 오른손 강타자 김승관의 활약 속에 대통령배 우승에 성공하면서 오랜 침묵을 깼다. 이 때의 중흥은 1990년대 말로 이어지는데 장준관이정호라는 거물 고교 투수들이 등장하면서 대구상고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총 4차례 결승에 올라 두 번 우승에 성공했다. 다만 이 때 우승의 주역이었던 장준관과 이정호 모두 프로 무대에서는 대성하지 못한 것이 옥의 티라면 티. 이정호는 1차 지명을 받았는데 결국 먹튀로 전락한 채 박진만의 보상선수로 끌려갔고, 장준관은 2008년에 웨이버 공시되는 굴욕을 당한 후 은퇴했다.

2000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김주철의 성남고에게 패하면서 우승 기회를 놓친 후, 대구상고 야구부는 쭉 하향곡선을 그렸다. 역시 안지만처럼 훗날 포텐셜을 터뜨린 선수들이 존재했을 정도로 인재는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지만 성과는 나지 않았다. 이는 동향의 라이벌 경북고가 부진한 것과 맞물리면서 대구 지역의 야구 패권을 대구고에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졌고, 연고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는 뒷목을 잡으면서 아쉬운 1차 지명을 찍어야 했다.

2.4. 2010년 이후[편집]

2009년 대통령배 결승은 오랜만의 성과였다. 2004년 일반계 전환 후 맞이한 첫 결승전에서 박화랑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덕수고의 야수진의 힘과 심판진의 힘(?)[10] - 특히 9회에 나왔던 여러번의 결정적인 오심논란 - 을 이겨내지 못하고 9:10의 분패를 당하면서 우승의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2011년 청룡기에서 2학년 좌완 에이스 김성민의 활약으로 정말 오랜만의 우승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부활하는가 싶었는데, 그 김성민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부정계약 시비로 징계를 받아 팀을 이탈하는 통에 다시 정상권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2015년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 결승전에서 지역 라이벌 경북고에 13-11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3학년 2루수 이석훈이 최동원선수상[11]을 수상했다.

2015년 제69회 황금사자기에서 결승에 올라 17년만의 황금사자기 제패에 도전했으나 원투펀치 이영하-김대현이 버틴 선린인터넷고에 2:7로 역전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5년 제70회 청룡기에서 성남고를 에이스 전상현의 활약으로 12:2 로 누르고 4년만에 정상 자리를 탈환하였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서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첫 야구대회 우승이다.

2.5. 2020년 이후[편집]

2020년 코칭스태프는 김승관(감독), 양용모(타격, 포수), 강현철(1학년 투수), 황석호(내야 수비, 팀 작전), 박화랑(2학년 및 3학년 투수) 등 5명이다.

2020년 황금사자기 1회전에서 인상고에 1:5로 패하며 탈락했다. 대통령배에서는 울산공고, 마산고, 야탑고를 차례로 꺾고 4강에 진출했으나 마산고와 서스펜디드 게임을 치른 후유증[12]에 주축 투수인 이승현이 더 이상 등판할 수 없다는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고[13] 신일고에 7-18로 패했다.

2021년 청룡기에서 8강전에 진출했으나 군산상고에 패했다.

2022년 청룡기에서 8강전에 진출했지만 장충고한테 0-3으로 패했다.

2023년 신세계이마트배에서 8강까지 갔으나 그해 대회 준우승팀인 강릉고한테 패했다.

2023년 전반기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반기 경상권 B에서 5승 1패를 기록하며 8년만에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상권 B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진 황금사자기에서 나주광남고, 부산공고, 대구고, 광주일고를 차례로 물리치고 4강에 올라 8년 전 결승에서 만났던 선린인터넷고와 맞붙게 됐으나 준결승에서 7:11로 패했다.

2023년 8월 대통령배에서 연장전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장충고에 승리했으나 2회전에서 장현석이 구원등판한 마산용마고에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23년 봉황대기는 1회전에서 부전승의 행운을 안았고 64강전에서 난적 인천고에 승리했다. 32강전 예일메디텍고, 16강전 물금고를 격파하고 8강전에서 지역 라이벌 경북고에 승리하고 4강전에 진출했으나 세광고에 패했다. 만약 4강전에서 승리했다면 또다른 지역 라이벌 대구고를 상대할 수 있었다.

2024년 신세계이마트배에서 율곡고야구단, 의왕BC, 휘문고, 제물포고를 꺾고 8강에 진출했으나 전주고에 패했다.

2024년 황금사자기에서 경기상고, 경동고, 전주고, 중앙고를 꺾고 준결승전에서 강릉고를 상대로 6-4 승리를 거두고 9년만의 전국대회 본선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2024년 신세계이마트배 챔피언 덕수고에 0-4으로 패하며 우승을 아쉽게 놓쳤다.

 

3. 출신 선수[편집]

졸업연도 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되어 있거나 등재기준을 만족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내야수
-
경북대-공군
내야수
-
제일은행-한국전력
투수
-
제일은행-육군
포수
-
제일은행-해병대
포수
1982년 코치 겸 선수
제일은행-한일은행-삼성(1982~1983)
내야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실업롯데-삼성(1982~1985)-빙그레(1985~1988)-태평양(1989~1990)
외야수
한양대-포철-경리단-삼성(1983~1988)-롯데(1989~1992)
투수
한양대-경리단-삼성(1983~1988)-롯데(1989~1992)
투수
1982년 창단멤버
건국대-포철-삼성(1982~1986)
투수
1982년 창단멤버
성균관대-삼성(1982~1984)
내야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삼성(1982~1988)-롯데(1989~1991)
포수
1982년 창단멤버
한양대-삼성(1982~1997)
투수
건국대-삼성(1983~1989)
외야수
성균관대-삼성(1983~1990)
내야수
건국대-삼성(1985)-빙그레(1986~1990)-태평양(1991~1995)
내야수
한양대-삼성(1985~1993)-태평양(1994~1995)
외야수
건국대-빙그레/한화(1985~1997)
외야수
한양대-삼성(1985~1996)-쌍방울(1997)
외야수
영남대-삼성(1987~1992))
외야수
동아대-빙그레/한화(1987~1994)-삼성(1995~1996)-OB(1997)
투수
계명대-삼성(1992~2001)-SK(2002~2003)
외야수
영남대-상무-삼성(1993~1998)-해태(1999)-LG(2000~2001)-삼성(2002~2010)
외야수
1991년 연고지명
삼성(1991~1996)-한화(1997~1999)-두산(1999~2009)
투수
1991년 연고지명
삼성(1991~1996)
투수
영남대-삼성(1996~2008)
내야수
삼성(1995~2004)-롯데(2004~2007)
내야수
삼성(1996~2001)
내야수
고려대-현대(2003~2007)-넥센(2008~2011)
투수
홍익대-SK(2003~2013)-삼성(2014)
포수
홍익대-KIA(2003~2015)-한화(2016~2017)
투수
해태(2000)-삼성(2001~2006)-롯데(2007~2017)
내야수
롯데(2000~2014)-KT(2015~2018)
포수
동아대-두산(2004~2012)-롯데(2012~2014)-KT(2015)-NC(2015~2016)
내야수
한양대-KIA(2004~2011)-삼성(2013)
투수
LG(2000~2008)
외야수
홍익대 중퇴-네브래스카대학교-KIA(2007)-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2008)
투수
삼성(2001~2004)-현대(2005~2007)-넥센(2008~2010)
투수
삼성(2002~2016)
포수
한양대-삼성(2007, 2011)
투수
두산(2005~2006)-삼성(2006~2016)
포수
현대(2006~2007)-넥센(2008~2016)
투수
삼성(2007~)
내야수
2010년 육성선수 입단
강릉영동대-롯데(2010)-SK(2011)-NC(2012~2020)-LG(2021~2022)-KT(2023)
외야수
삼성(2008~2017)-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스(2018)
포수
영남대-한화(2014)-삼성(2015~)
외야수
2014년 육성선수 입단
성균관대-한화(2014~2015)
투수
2010년 육성선수 입단
삼성(2010~2012)
내야수
영남대-삼성(2014~2021)
내야수
성균관대-LG(2015~2020)
내야수
고려대-삼성(2015~2016)
투수
성균관대-KT(2015~2017)-롯데(2018~2022)
외야수
영남대-삼성(2015~2018)
포수
2016년 육성선수 입단
연세대-넥센/키움(2016~2019)
내야수
SK(2012~2019)-KT(2019~2021)-롯데(2022~)
외야수
삼성(2012~2016)
투수
후쿠오카경제대-SK(2017)-넥센/키움(2017~)
내야수
한양대-삼성(2017~2021)
투수
삼성(2014~2022)
내야수
한양대-KT(2018~2019)
투수
한양대-삼성(2018~)
투수
넥센(2015~2017)
외야수
송원대-SK/SSG(2019~)
외야수
2020년 육성선수 입단
한양대-두산(2020~2021)
외야수
성균관대-SK/SSG(2020~)
외야수
한화(2016~2022)-KT(2022~2023)
투수
KIA(2016~)
내야수
두산(2016~2022)
포수
경남대-LG(2021~)
투수
롯데(2018~2020)
외야수
KT(2018~2023)-LG(2024~)
외야수
동아대-NC(2022~)
투수
NC(2019~2023)-한화(2024~)
투수
삼성(2021~)
외야수
삼성(2022)
외야수
두산(2024~)
내야수
롯데(2024~)
투수
NC(2024~)

3.1. 여담[편집]

  • 대구상원고 졸업기수는 아래와 같다.
  • 43회: 정기혁, 김종우

47회: 장효조, 김한근, 최병국

49회: 김시진

50회: 이만수

53회: 이강돈, 김성갑, 김용국, 이종두

55회: 이정훈

60회: 양준혁

63회: 전상렬

64회: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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