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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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종범
蔡鍾範 | Chae Jong-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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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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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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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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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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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cm, 8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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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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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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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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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차 11라운드 (전체 82번, 쌍방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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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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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2000~2008)
KIA 타이거즈 (200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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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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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타격코치 (2012)
kt wiz 타격코치 (2014)
kt wiz 1군 타격보조코치 (2016~2017)
NC 다이노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19~2021)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2022)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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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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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1순위 지명을 받고[8]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지명권은 SK 와이번스에 인계되었다. 2000년에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주축으로 창단한 SK 와이번스에 창단 멤버로 입단, 데뷔 첫 해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SK 창단 초기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다. 2002년에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타율 0.291 17홈런 68타점을 기록했으며 5월29일 대구에서 삼성을 상대로 6타수 6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당시 SK 구단에서는 젊은 선수들을 좋아하는 강병철 감독이 중용하기도 했고 채종범이나 이진영 정도를 빼고는 이렇다 할 팀의 주축 야수가 없었기에 구단의 대표 선수로 적극 밀어주던 편이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일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전년도인 2002년과 다르게 94경기에 출장해 타율 0.242에 그치며 부진한 데 이어 2004년에는 경기 중 어깨 골절을 당하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동안, 하필이면 병역비리 크리가 터져[9] 이듬해인 2005년 8경기 뛰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2008년 소집해제 후 SK 와이번스에 복귀했으나, 서른이 넘어 공익 복무를 했기 때문에 장기간의 실전 공백이 생겼고 이미 몸은 예전의 좋은 성적을 내던 상태가 아니었다. 거기에 외야에는 이미 박재홍, 이진영 등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데다 팀의 주축으로 성장해 버린 조동화, 김강민, 박재상 등에 밀려 채종범에게는 기회가 전혀 올 수가 없었다. 당시 SK의 타격코치였던 이세 다카오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년 동안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해 어깨가 정상이 아니었다며, 대한민국의 병역 의무가 선수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하였다. 결국 SK에서는 설 자리를 잃었고, 2008년 5월 4일 전병두, 김연훈 - 이성우, 김형철, 채종범 트레이드로 인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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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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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후 당시 병역특례를 받은 좌완 파이어볼러 전병두와 내야 유틸이었던 김연훈을 거의 조공격으로 넘긴 것 때문에 이적하자마자 엄청나게 까였다. 게다가 소집해제 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성적까지 점점 하락하는 와중에 조범현 감독은 우익수 자리에 계속 넣어주면서 양아들 소리까지 듣는 등 평생 먹을 욕을 거의 다 먹게 된다. 당시 조범현 감독이 주전 우익수 기회를 계속 준 탓에,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정후는 "아빠, 아빠 이름이 잘못 나와 있어"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
이러한 당시의 비판 여론에 대해서 과하다는 의견도 있고, 기아 입장에서는 할 만 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대체적인 의견은 그렇다 하더라도 기아 프런트가 트레이드를 잘못 했다는 평. 상세한 내용은 이쪽 참조.
여튼 욕만 먹다가 2008 시즌을 보내고 2009 시즌을 의욕적으로 준비했으나, 시범경기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 결국 1군에는 한 번도 올라오지 못하고 재활 치료로만 1년을 보내게 된다.
2010 시즌엔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하고 있는데[10]시즌 초반에는 무릎이 완전하지 않았는지 부진하다가 2군에 내려갔다. 위에서 얘기한 트레이드 논란과 신통찮은 성적 때문에 KIA 팬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으나, 2010 시즌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두고 삽질도 모자라 포크레인질을 하는 나지완을 대신해 지명타자로 출전하며 7경기 연속 타점과 최근 5경기에서 홈런 3방을 몰아치며 대 폭발했다. 애초에 조범현 감독은 채종범이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 외야 슬롯 하나를 채종범에게 주려고 했다고 한다니, 뒤늦게나마 터진 게 그나마 다행.
별명으로는 짭종범[11], 조범현의 양아들이라고 해서 조종범 등이 있다.[12] 2010년 7월에 좋은 활약을 보여, 종범甲의 뒤를 잇는 종범乙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7월 22일 삼성전에서 6회말 정현욱에게 투런 홈런을 쳐내고 8회말에는 차우찬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냈으나 정작 팀은 불펜진들의 퐈이아로 패배. 7월 27일 롯데전에서는 6회와 8회 담장을 때리는 장타를 날렸다. 오오 역시 종범乙.
그리고 7월 29일 한싸홈 때는 투런 홈런을 치면서 한싸홈 기록을 세우는 것을 돕게 되나 8월 들어 엄청난 부진에 빠지며 2군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2011년에는 1군에 아예 올라오지 못했으며, 계속 부상에 신음하다 보니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한 탓에, 2011년 10월 1일에 프런트에서 선수 정리 명단을 발표했을 때 방출되었다는 오보가 나왔을 정도. 시즌 중 아예 3군에서도 열외되어 이영수와 함께 개인훈련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2011년 12월 1일부로 KIA에서 방출되었다.# 하필이면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있던 상황에서 방출된 탓에 팬들의 아쉬움을 샀는데 일단 채종범 본인은 현역 연장에 대한 마음이 있어 새로 불러주는 팀을 기다리겠다며 개인훈련을 계속 해왔다. 그러나 결국 그를 선수로 불러주는 팀은 없었고, 마침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코치 제안을 받아들이며 은퇴를 선언하고 NC 타격코치로 합류했다.# 그러나 1년만에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NC 다이노스의 1군 진입을 못 보고 팀을 떠났다.
2013년 한 해는 야인으로 있다가, kt wiz가 창단되고 사령탑에 조범현 감독이 취임하면서 kt의 코칭스태프로 영입되었다. 과거 SK, KIA 선수 시절 조범현 감독과 함께했던 인연으로 합류한 듯 하다.
2015 시즌 개막 후 2군 타격코치를 맡았으나 시즌 초반 kt wiz가 연패를 거듭하면서 코치진의 보직 변경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잔류군 야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2016년에는 1군 타격 보조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조범현 감독이 물러나고 김진욱 감독 부임 후에도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1군 보조코치로 잔류하고 있었다.
기존 1군 메인 타격코치였던 김광림 코치가 팀을 떠난 2018 시즌부터는 1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 아직 시즌 초이지만 타자들의 기량이 지난 시즌에 비해 확실히 좋아진 티가 눈으로 봐도 드러나는 점으로 인해 모두가 비시즌에 뭘 시킨거냐면서 놀라워하는 편. 5월에는 사이클이 많이 죽어버리긴 했어도 지난 시즌 대비 지표는 확실히 올랐다는 점만으로도 좋게 볼 필요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시 팀 타격감이 죽어버리면서 채종범 코치에 대한 비판도 늘었고, 결국 이숭용 타격코치와 보직을 바꿔서 2군 타격코치로 이동했다. 2018 시즌 후 kt wiz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2018년 10월 24일 NC 다이노스의 코치로 영입되면서 6년 만에 고향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역할은 1군 보조 타격코치.
일단 1군 메인 타격코치는 이호준이기 때문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나름 지도를 잘 하면서 2019 시즌 팀 홈런 1위, 타율 2위, OPS 2위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팀 역사상 최고의 타선을 만들었고 현역때는 갖지 못했던 우승 반지도 챙겼다.[13]
2022년에는 이호준 코치가 LG 트윈스로 이적하면서 1군 메인 타격코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즌 내내 팀 타격이 이름 값에 걸맞는 활약을 하지 못하면서 팬들의 원성을 크게 샀다. 결국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게 되었다.
2023년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역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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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출루율
|
장타율
|
2000
|
132
|
457
|
.247
|
113
|
22
|
5
|
8
|
52
|
55
|
5
|
44
|
.311
|
.370
|
|
2001
|
117
|
396
|
.255
|
101
|
15
|
0
|
8
|
38
|
54
|
6
|
53
|
.343
|
.354
|
|
2002
|
127
|
478
|
.291
|
139
|
19
|
2
|
17
|
68
|
79
|
10
|
65
|
.374
|
.446
|
|
2003
|
94
|
223
|
.242
|
54
|
10
|
0
|
3
|
15
|
20
|
0
|
17
|
.292
|
.327
|
|
2004
|
104
|
321
|
.293
|
94
|
21
|
2
|
7
|
43
|
48
|
2
|
44
|
.374
|
.436
|
|
2005
|
8
|
9
|
.556
|
5
|
1
|
0
|
0
|
1
|
4
|
0
|
2
|
.636
|
.667
|
|
2006
|
1군 기록 없음
|
|||||||||||||
2007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출루율
|
장타율
|
2008
|
70
|
147
|
.197
|
29
|
3
|
1
|
4
|
16
|
13
|
2
|
15
|
.270
|
.313
|
|
2009
|
1군 기록 없음
|
|||||||||||||
2010
|
29
|
77
|
.234
|
18
|
3
|
0
|
3
|
13
|
6
|
0
|
7
|
.294
|
.390
|
|
2011
|
1군 기록 없음
|
|||||||||||||
KBO 통산
(8시즌)
|
681
|
2108
|
.262
|
553
|
94
|
10
|
50
|
246
|
279
|
25
|
247
|
.337
|
.388
|
- KIA 시절 응원가는 홈플러스 CM송을 개사한 곡이다.
- 이종범이 2001년 일본 생활을 마치고 KIA 타이거즈로 복귀했을 때 복귀전에서 맹활약하며 KIA 타이거즈에 패배를 안겨 주기도 했다.
- 프로 현역 시절에는 외야수지만 마산고등학교 시절엔 유격수였으며,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기도 했는데 그 당시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던 선수가 신명철이다.
- 선수 시절에는 소속 팀이 우승할 때마다 밖에서 지켜보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었다. SK 와이번스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땐 공익으로 복무 중이었고,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 2008년에는 전 소속팀이었던 SK가 우승했고 KIA는 6위로 떨어졌으며, KIA가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땐 재활 치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객석에서 지켜봤다. 그래서 재활 당시 우스갯소리로 "내가 없어서 KIA가 우승할 거 같다"라고 말했는데, 진짜로 KIA가 2009년에 우승했다! 채종범이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것은 SK 선수로서 7차전까지의 접전으로 준우승(현대 우승)을 차지했던 2003년 한국시리즈뿐이다. 한편, 채종범이 소속된 팀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8-7-6-2-5-4-6-1-6-1-5-4. 하지만 은퇴 후 NC 코치 시절, NC 다이노스의 첫 우승인 202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우승반지를 코치가 된 뒤에야 껴보게 되었다.
- 2008 시즌 초반[14] 이정후가 전광판에 채종범이라는 이름이 뜬 것을 보고 "어, 아빠 이름이 잘못 나왔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
- 2010년[15] 덕아웃에 있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는데 이용규-최용규-이종범-채종범 순서대로 서 있었다.
- 이종범을 갑종범 채종범은 을종범 으로 구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