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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No.85 박계원 감독

by 아기 자동차 2024.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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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등학교 야구부 No.85
박계원
朴啓源 | Park Gye-won
출생
국적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대한민국
학력
포지션
투타
프로 입단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0~2002)
지도자
GCL 파이리츠[2] 연수코치 (2003)
SK 와이번스 2군 작전·주루코치 (2004~2005)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06)[3]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 (2006)[4]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07~2009)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 (2010~2011)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2)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 (2013)[5]
롯데 자이언츠 2군 작전·주루코치 (2013)[6]
kt wiz 작전코치 (2014)
kt wiz 1군 작전·주루코치 (2015~2016)
SK 와이번스 1군 수비코치 (2017~2018)[7]
SK 와이번스 루키팀 수비·작전코치 (2018)[8]

1. 개요[편집]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빠른 년생으로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으며 1988년 부산고 졸업, 1992년 고려대를 졸업했고 그 해 아마추어 국가대표 유격수로도 발탁되기도 했다. 유격수 치고 큰 키[9]와 강한 어깨로 수비에서 강점을 보였고, 그 때문에 1992년 드래프트 2차 2순위 지명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프로에 데뷔한 1992년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여 121경기 .243 6홈런 47타점을 기록, 신인으로서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몇 안 되는 선수가 된다.[10] 롯데가 3위를 차지하는데 일조했으며 특히 포스트 시즌에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삼성과 맞붙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솔로 홈런을 때리는등 2경기 .429 1홈런을 기록했고, 해태와 붙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연장 10회초, 조계현에게 결승타를 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17타수 5안타 .294를 기록하며 1992년 한국시리즈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신인왕은 같은 팀 투수 염종석이 차지했지만,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것으로 자신의 활약에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 이 때 쯤 수영초 야구부 감독인 친구를 보러 수영초에 왔다가 매우 유망하지만 집이 가난했던 아이에게 야구장비를 사주는 등 여러모로 도와줬었는데, 그 아이는 다름아닌 이대호였다.[11]

 
 

1993년까지 주전 유격수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이듬해인 1994년 어깨부상을 달고 무리하게 경기에 출전하는 바람에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이때 방위 복무 중이라 홈 경기에만 출전했음에도 부상이 악화된것. 1997년에 재활을 마치고 그라운드로 복귀했지만, 그가 빠진 자리를 김민재가 성공적으로 메우며 벤치 멤버로 전락해 1998년 6월 5일 이동수와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트레이드됐다.[12] 이후 벤치멤버로 활동하다가 1999년 4월 16일 오봉옥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13]되었다. 사실상 제과업계 라이벌 혹은 영호남 라이벌이여서 보기 힘든 부산 출신 해태맨이 되었다.[14][15] 이 때 이종범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김종국이 부상당한 해태의 내야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이듬해인 2000년 또 다시 2:2 트레이드[16]의 대상자로 SK 와이번스로 이동했다.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통산 9시즌 동안 1,812타수 439안타(홈런 19개)로 타율 0.242를 기록했다. 종합적인 평가를 하자면, 유격수로써는 나쁘지 않은 타격과 준수한 수비로 팀에 도움이 되었던 선수라고 볼 수 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2002년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한 후 2003년 한 해동안 미국으로 건너간 뒤 플로리다 주 브래든턴에 위치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산하의 마이너 루키 팀[17]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뒤 2004년부터 SK 와이번스의 2군 수비코치로 합류했다.

이후 2006년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수비코치로 자리를 옮기면서 친정 팀에 복귀했다. 이후 2009년까지 수비코치를 맡았고 2009년엔 작전/주루 코치도 겸하여 2010년부터는 작전/주루 코치로 전환하여 2011년까지 맡다가, 다시 2012년에는 수비코치를 맡았다.

수비코치로의 능력은 롯데의 화약고 공필성보다는 낫다는 게 중론. 실제로 2009년을 제외하고 박계원이 수비코치를 맡은 해엔 롯데의 실책 순위는 3~5위권을 유지했으나 공필성이 맡은 해엔 어김없이 실책 1위를 기록했으니... 실책이 수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롯데의 수비를 본 사람들이라면 실책이라도 줄였으면 하는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라서...

하지만 작전/주루코치로는 다소 의문이라는 평가. 주루는 몰라도 롯데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크게 나아졌다는 평가는 그가 작전코치를 맡은 동안엔 별로 없었다.

 
 

어쨌든 2013 시즌부터는 다시 작전/주루코치로 활동한다. 그리고 수비코치는 다시 공필성이 맡았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롯데는 2013 시범경기에서 초반 3경기부터 7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그리고 페넌트레이스 시즌 초 롯데에서 좋지 않은 플레이를 보이게 되자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박현승과 교체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2013년 시즌 종료 후 SK 코치 시절 감독이었던 조범현과의 인연 때문인지 롯데를 떠나 kt wiz의 창단 코칭스태프로 영입되었다. kt에서도 주로 작전코치 또는 주루코치를 맡다가 2016년 시즌 후 조범현이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그도 kt 유니폼을 벗었다.

2017년부터는 SK 와이번스의 수비코치로 영입되면서 2005년 이후 12년만에 SK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SK 팬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무척 나쁘다. 실책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등 팀 수비력이 퇴보해 간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보니 그에 대한 평가도 급락했다. 결국 2018년 7월 14일부로 루키팀 수비·작전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대신 1군으로 올라온 코치는 손지환. 결국 시즌 후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20년 9월 14일에 모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2022년 9월 3일 봉황대기 8강에서 광주동성고전 연장10회 승부치기에서 3대2 끝내기 폭투로 부산고등학교를 26년만에 봉황대기 4강진출을 이끌었으며 9월 8일 열린 준결승에서는 북일고에 3:2로 승리를 거두고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추석 연휴 뒤 열린 결승에서 강릉고를 1:0으로 꺾고 팀에 29년만의 봉황대기 우승[18], 22년만의 전국대회 우승(전국체육대회 제외)[19]을 안겼다.

2023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선린인터넷고를 12대3으로 꺾고 4전5기 끝에 황금사자기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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