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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붉은빛이 탐스러운 단팥이군요, 붉다는 것은 열정이죠”

by 아기 자동차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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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손관승의 영감의 길]
한국의 단팥 애호가가 새로운 영감을 찾는 법

일본 도쿄에 있는 '기무라야'는 단팥빵의 원조라 주장하는 빵집이다. 서양 빵과 수입된 설탕, 동양의 팥이 만나 새 가치를 창조했다. /손관승 제공
음식 문화에 관한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미식 예찬’의 저자 브리야사바랭이 말했던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테니까.” 만약 그가 나 같은 사람을 봤다면 뭐라고 할까. 단팥빵, 단팥죽, 팥빙수, 모나카, 찹쌀떡, 양갱, 붕어빵, 호두과자, 심지어 빙과류도 팥 들어간 것만 먹으니 말이다. 지방 출장을 가서도 그 지역 유명 빵집에서 팥 들어간 빵만 고른다.

 


어린 시절 팥은 기다림이고 그리움이었다. 잠시 떨어져 살던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 손에 쥐여준 것은 단팥빵. 안도감이 녹아들면서 얼마나 달콤했던지. 친척 결혼식에 다녀온 부모님이 하루 종일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내놓은 것은 하객용 찹쌀떡. 입에 흰 가루 묻혀가며 허겁지겁 먹으려 하자 “급히 먹으면 체하니까 천천히 먹어라” 하시던 어머니는 지금 스스로 음식을 넘기지 못해 콧줄을 낀 채 힘겨운 병원 생활 중이다. 퇴근길 골목에서 붕어빵 굽는 아주머니가 보이면 언제나 반가웠다. 붕어빵 아들에게 “붕어빵 한 개 더 먹어도 돼요?”라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어느 날 단팥은 내게 새로운 영감의 매개체로 다가왔다. 콘텐츠 플랫폼 회사의 대표이사가 되어 도쿄 출장을 다닐 때였다. 한류 사업을 위해 만난 일본 회사 대표는 단팥을 좋아한다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긴자의 ‘기무라야’로 데리고 갔다. 1869년에 설립된 단팥빵의 원조라 주장하는 빵집이다. 서양 빵과 ‘슈가 로드’를 통해 수입된 설탕이 동양의 팥과 만나 음식 융합이 일어난 것처럼 두 회사가 힘을 합쳐 새 가치를 창조하자는 뜻이었다. 이후에도 그 회사 직원들의 서울 출장길에 단팥빵과 앙버터를 챙겨 보내주곤 했다. 일본 특유의 특산품 선물 문화인 ‘오미야게’의 세심함이었다.

도쿄의 재개발을 상징하는 롯폰기힐스와 아자부다이힐스. /손관승 제공
몇 달 뒤 계약을 위해 도쿄를 다시 방문하였다가 깜짝 놀랐다. 비싸기로 소문난 롯폰기힐스의 모리타워에 있는 코너 오피스도 멋있었지만 진짜 감동은 회의가 끝난 다음이었다. 그가 오찬 장소로 나를 안내한 곳은 회사가 아닌 개인 소유의 단층 스튜디오였다. 주방과 작은 테이블 하나, 의자 네 개가 전부였다. 벽에는 레게 음악으로 유명한 밥 말리의 초상화, 몇 개인지 모를 전자 베이스기타가 보관되어 있었다. 장소 안내를 끝낸 뒤 갑자기 그가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는 것 아닌가? 그날의 셰프는 사장 본인이었던 거다. 나처럼 월급 사장도 아닌 회사를 설립한 오너 경영자였는데, 직접 요리를 하고 부르고뉴 와인도 서비스했다. “창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경영자도 외로운 사람이잖아요. 고독감이 엄습할 때면 혼자 이 스튜디오로 옵니다. 와인 한 잔 마시고 미친 듯이 전자 기타를 연주하다 갑니다. 방음 장치에 돈 좀 들였지요, 하하!”

 


숫자와 낭만을 겸비한 최고 경영자는 흔치 않다. 화답 방문으로 서울에 와서도 비싸고 화려한 음식점보다 소박한 간장게장집이나 곱창집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건배하는 것으로 유대감을 다지곤 했다. 알고 보니 그는 한국 음식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제가 서울 출장 가면 언제 뿌듯한 줄 아세요? 항공기 탑승을 앞두고 혼자서 공항 식당에서 부대찌개로 마무리할 때입니다. 얼마나 맛있는 줄 모릅니다.” 맛있다는 뜻의 일본어 ‘오이시’를 몇 번이고 외쳤다. 헤어지기 직전 우리는 다음 해 벚꽃이 피면 도쿄에서 다시 만나 술잔에 벚꽃 띄워놓고 함께 마시자고 약속하며 술의 이름을 ‘사쿠라 소맥’이라 정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내 임기가 끝나는 바람에 지키지 못했다. 개인 자격으로 초청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응할 수 없었다. 좌절된 열정과 다시 마주하고 싶은 용기가 없었던 때문인지 모른다.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서 주인공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가 운영하는 도라야키 가게.
10년이 지났다. 찬 바람이 불던 며칠 전 도쿄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지인 추천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영향이었을까. 팥소를 넣은 일본식 팬케이크 ‘도라야키’는 저마다 상처를 지닌 채 좌절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매개체로 그려지고 있었는데 핵심은 단팥.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말처럼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을 의미했다. 여배우 기키 기린의 인생 마지막 명연기라고 하는데, 영화 속 목소리에 울림이 있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못 되어도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그렇다. 우리는 저마다 살아갈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긴자의 기무라야 앞에는 영업 시작 전부터 긴 대기 줄이 늘어서 있었다. 쫄깃쫄깃한 빵에다 너무 달지도 않은 단팥 맛이 일품이었다. 빵 한 봉지 사서 도쿄 탐방에 나섰다. 클립이 상징이며 12층 건물 전체를 쓰는 문구 전문점 이토야, 천지개벽한 롯폰기힐스와 아자부다이힐스 도심 재개발, 다이칸야마의 서점 순례를 마치고 지친 몸을 쉴 겸 재즈바에 들렀더니 비지 어데어 트리오의 ‘autumn leaves’가 흘러나온다. 우아하고 세련된 연주를 자랑하는 3인조 밴드인데, 리더인 재즈 피아니스트 비지 어데어는 55세가 되어서 비로소 첫 개인 앨범을 발표했지만, 80대 중반 세상을 뜰 때까지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라이브 공연을 하였다고 하니 해피엔딩 할머니였다.

음악에 취해 여행자의 감상에 빠져 있는데 바텐더가 한마디 툭 던진다. “붉은빛이 탐스러운 단팥으로 만든 빵이군요. 붉다는 것은 열정이죠.” 탁자에 올려놓은 단팥빵 포장을 본 모양이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와 함께 커티삭 하이볼을 한 잔 주문하였다. 그래, 다시 시작해 볼까? 그게 뭐든 말이다.

기무라야에서 판매하는 단팥빵. /손관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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