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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물 무형

대한민국 제11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진숙

by 아기 자동차 2024.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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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李眞淑 | Lee Jin-sook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출생
본관
현직
재임기간

1. 개요[편집]

대한민국언론인, 정치인. 문화방송 기자, 보도본부장, 대전문화방송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2. 생애[편집]

2.1. 유년기 시절[편집]

1961년 7월 4일,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에서 아버지 이동윤과 어머니 서산 류씨(瑞山 柳氏) 류월란 사이의 2남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월항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아버지를 따라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대구남도초등학교구남중학교, 신명여자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국고등학교(現 대구 대원고등학교)에서 1학기, 서부여자중학교(現 서대구중학교)[7]에서 1년간 영어교사재직했다.

2.2. 언론인 시절[편집]

 

 

2.2.1. 기자 시절[편집]

상경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6년 10월 MBC 기자 공채에 합격해 기자의 길을 걷게 된다. 문화부, 사회부, 국제부 등에서 기자 활동을 했다. 1990~1991년 걸프전 때 현지 특별취재반으로 파견되어 첫 여성 종군기자가 되었고 2003년 이라크전 전장에서도 미군의 공습을 보도했다. <월간조선> 2021년 1월호 인터뷰 기사

1991년 분신정국 당시에는 강경대의 노제를 취재하다# 1991년 5월 18일 이정순의 분신자살을 목격했고, 이정순 분신에 대한 왜곡보도를 하지 말라고 간부들에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후 언론노보에 반박 기고를# 하고 한국프레스센터 토론회에서 MBC의 왜곡보도를 비판했다. # 1992년에는 노조 유인물을 돌리고 단식하는 등 MBC 노조의 50일 파업에 적극 동참했는데 훗날에 MBC 보수화 주역 중 하나인 김재철도 이 파업에 동참했다. #

취재 업무 외에 2004년부터 5년여 간 MBC 뉴스 홈페이지에 칼럼 '이진숙의 World Report'를 연재한 바 있다. 2005년에는 보도제작국 시사매거진 2580의 취재데스크를 맡기도 했으며 같은 해에 국제부장으로 승진했고, 2006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전보되었다.

2.2.2. 간부 시절[편집]

기자 시절과 달리 간부 시절에는 게임, 노동조합에 적대적 성향을 보였고 많은 논란이 있었던 김재철과 함께 활동하며 승진하고 대전MBC 대표이사 취임으로 대전MBC 뉴스를 중동 뉴스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영배, 권재홍, 김장겸과 함께 문화방송의 흑역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김재철 사장 취임 후 2010년 3월 인사 때 기획국 정책협력부장을 거쳐 동년 7월 16일 인사에서 홍보국장을 맡았고, 2012년 4월부터 기획홍보본부장을 맡다가,[8] 2013년 5월부터 워싱턴지사장을 역임하였다. 하술할 논란으로 MBC 기자협회에서 제명되었다. 당시 김재철 사장의 횡령의혹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해명하기에 바빴으며, 이용마, 박성호, 박성제 기자 등의 해고에 있어 앞장선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4년 2월 방송문화진흥회의 차기 MBC 사장 공모에 응모해 안광한, 최명길과 같이 최종 후보까지 올랐으나, 안광한이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2014년 3월 인사에서 보도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MBC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 3사 최초의 여성 보도본부장이었다. 2014년에 방영되었던 압구정 백야에서 뉴스 앵커 역을 맡아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정작 이진숙은 실제로 앵커를 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때 편향적인 보도와 실종자·희생자 가족을 배려, 고려하지 않은 뉴스보도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 결과 2014년 4월 28~29일에 뉴스데스크가 JTBC 뉴스룸에 시청률이 사실상 따라 잡혀 역전되었다. 그러나 당시 방송사는 자화자찬하였고 5월 12일 1노조로부터 박상후 당시 보도국 전국부장의 뉴스데스크 '분노와 슬픔을 넘어' 리포트 및 "그런 X들은 조문해 줄 필요 없어" 등 발언 논란이 폭로되었으며 13일자 <한겨레> 단독보도에서 실종자·희생자 가족이 정부에 요구안을 내놓는데 대해서 당시 보도국장인 김장겸이 동년 4월 25일 편집회의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가 반정부 행태라며 유족을 '깡패'로 지칭한 정황이 폭로되었다. 김장겸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했으며 언론노조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이 둘을 검찰에 고발했으나 각하되었다. #

 

2014년 5월 8~9일에 KBS 김시곤 前 보도국장이 구설수 이후 자진 사퇴 후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에 대해 폭로한 것이 촉발이 되어 KBS 전체로 길 사장 퇴진과 파업 찬반투표가 진행되었으나, 막상 안광한 사장- 이진숙 보도본부장- 김장겸 보도국장 체제에서 MBCKBS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막상 잠잠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2012년 파업 이후 노조 소속의 주축 인력을 한직으로 내몰은 상황에 징계·퇴직 직원은 외부에서 경력직이라는 명목으로 데려다가 쓰는 상황이라 KBS와 같은 단체행동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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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음악채널의 개국을 위해 MBC GAME폐국을 밀어붙이거나,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 와갤 대 애갤 현피사건과 같은 게임에 대한 왜곡 보도가 잇따르기 시작한 김재철 사장의 최측근답게 보도본부장 시절에도 게임에 대해 왜곡되거나 편향된 보도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나아가 이러한 보도가 한국 게임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유발함과 함께 과도한 규제를 불러 일으켜 한국 게임산업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재뿌리기식 보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2014년 3월 14일 방송된 MBC 뉴스투데이에서 ahq Korea 승부조작 및 천민기 선수 투신사건에 대한 인터뷰를 게임중독으로 인해 순간적인 충동으로 투신했다고 편집 및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지상파 3사 중 이 사건을 게임중독과 엮은 곳은 MBC 단 한 곳 뿐이었으며, 정작 YTN에서는 동일한 형사가 나와서 "승부조작에 대해서는, 투신자가 숨지지 않았기 때문에 완쾌 후에 신고하면 판단해 수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멀쩡한 인터뷰를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9] 또한 서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의 원인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이유로 들거나 폭력적인 게임이 비만과 고혈압을 조장한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게임에 대한 편향된 보도를 넘어 동 시기에 안현덕 전 MBC PLUS 사장이 MBC MUSICMBC GAME 폐국에 대한 정당한 비판/의견 글까지 전부 삭제, 블라인드를 요청하거나 공식 홈페이지에서 감상이라도 가능했던 폐국된 MBC GAME의 방송 자료들까지 모조리 파기하는 등 이 당시 MBC의 게임에 대한 적대적인 행태는 매우 심각했다. 덕분에 김재철이 행했던 MBC GAME의 폐국인 만큼 그의 라인이던 이진숙 본부장이 김재철에 대한 충심 때문에 이런 괴랄한 보도가 나오도록 만들었다, 셧다운제 시행 등 게임 규제에 여념이 없던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MBC가 게임 때리기를 일삼고 있다는 게임 팬들의 성토가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블랙리스트, MBC 블랙리스트 사태 관련하여 2012년 MBC 파업 사태 때 기획홍보본부장이던 이진숙은 당시 김재철 MBC 사장의 입장을 적극 대변했는데 파업에 대해서 "불법 정치 파업"이라 주장했었다. 특히 170일 간의 파업 기간동안 사측이 '트로이컷'이라는 보안 프로그램을 구성원의 동의 없이 설치해 '직원 사찰' 논란이 있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해 2016년 대법원은 이를 불법으로 인정해 이진숙, 김재철, 조규승(당시 경영관리본부장), 차재실(당시 정보콘텐츠실장) 등 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게 했다. 'MBC 직원 사찰 묵인' 김재철·이진숙 손해배상 확정 MBC 기자협회에서 제명되었다.

이런 식으로 공정보도를 탄압하고, 정부의 나팔수 역할을 하도록 만든 원흉이라는 비판을 받은 이진숙은 승진했다. 2015년 3월 5일에 대전MBC의 대표이사로 부임한 것이다. 참고로 대전MBC 사장은 김창옥 아나운서가 맡고 있었으며, 아직 1년의 임기가 더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본사의 낙하산인 이진숙 사장이 내려오자, 제주문화방송 사장으로 보직을 옮기게 된다. 같은 날 인사발령이 논란이 많은 이들이 있는데 2012년 PD수첩 작가진 일방교체 같은 시사프로그램의 고발 기능 무력화 등의 평가를 받는 김현종 경인지사장이 편성기획본부장으로 승진하는가 하면, 정치부장 때부터 편향보도 논란 등이 있는 김장겸 보도국장이 보도본부장으로 승진했다.[10] 결국 2015년에는 3월 5일에 대전MBC의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재임 시절 과도한 중동 관련 뉴스 보도, 직원들에 대한 부당징계[11], 지역 현안 축소 보도 등 각종 논란으로 시민 사회에서도 낙제점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진숙이 사장으로 부임한 뒤 대전MBC는 소시지빵, 알통 뉴스를 능가하는 중동 지역 관견 보도를 하였다. 지역 언론은 대전, 세종, 충남 지역의 뉴스를 전해야 하지만 '중동에 투자하세요' 같은 뉴스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시에 유성기업 대량해직 사태 등 지역의 시급한 현안이 산재해 있었는데도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급기야 방한한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붙잡고 이진숙 사장이 직접 인터뷰까지 진행하였다. 압델 파타 엘 시시 정권에서 2015년 8~11월 사이에만 340명이 '실종'되었으며 2014년 4월 28일에는 시위에 관련된 무슬림 형제단 683명에게 무더기 사형 선고를 내리는 세계 초유의 기록을 세워 UN과 국제 사회가 현대사에 전례 없는 집단 사형 선고라며 비판하고 북한 김씨 3대, 시진핑과 비교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대전MBC가 2017년 하반기 전국MBC 직원 총파업 당시 대전 시민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한 충남대 재학생은 "저런게 지역뉴스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또 다른 시민은 "우리가 이런걸 왜 알아야 하나"라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이 시기 법인카드성심당에서 빵을 다수 결제한 것이 청문회에서 밝혀졌다. #

정권이 교체되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전 정권전전 정권의 방송 장악 계획이 드러나면서 김장겸, 춘천 MBC 송재우 사장[12] 등과 더불어 언론계에서 퇴출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컸다. 대전문화방송 직원 중 94%가 이진숙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최승호 신임 사장 부임 후인 2017년 12월 28일 방문진 임시 이사회에서 10명의 해임 협의 대상자 명단[13]에 올랐다. 2018년 1월 8일, 결국 대전MBC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였다. 후임은 대전MBC 출신 인사인 신원식. 그러나 자진 사임이었기 때문에 퇴직금까지 가져갔다.

 

이후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2.3. 정치 활동[편집]

2019년 10월 31일, 2020년 총선을 준비하던 자유한국당에 영입인재로 입당했다. 당시 지역 정계에서는 이진숙이 황교안 대표에 의해 영입되었고, 정종섭 의원과 가까워 친박, 친황으로 분류했다.

정종섭은 불출마를 하는 대신 류성걸을 견제하기 위해서 친박, 친황과 가까운 이진숙을 지원했고, 정종섭이 공천한 대구시의원과 구의원들이 이진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류성걸정종섭의 공천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진숙 측에서는 "이진숙 그대로 봐달라"면서 반박했다. # # # 정종섭이 공천한 대구시의원과 구의원들이 이진숙의 지지를 당부했지만 전 의원이자 4년간 텃밭을 다져온 류성걸의 조직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경선결과는 48.6대 61.4로 패배했다. 매일신문에 따르면 당시 이진숙은 여성 정치신인에게 부여되는 가산점 10점을 받아 유리한 고지에서 경선을 한 것으로 평가됐다. # #

 

2021년 8월 윤석열 대선캠프에 언론특보로 합류하였으나 캠프 기조와 결이 다른 페이스북 논평을 하여 일주일 만에 해촉되었다.[14] 그러나 2021년 10월 17일 윤석열 캠프 시민사회 총괄본부 대변인으로 재영입되었다.

2023년 8월, 여당 국민의힘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추천되었다. # 그러나 국회에서 야당 추천 인사 관련 논란으로 인해 야당 인사와 같이 임명되지 않고 있다.

2023년 12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탄핵안 발의로 인해 식물 방통위를 막기 위해 선제로 사퇴하게 되면서 후임 방통위원장 후보로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과 함께 거론되었으나 임명되지는 않았다. #

2.3.1. 방송통신위원장 임명[편집]

2024년 7월,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더불어민주당의 탄핵안 발의에 대해 선제로 사퇴하면서 또 다시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 결국 4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됐다. 임명될 경우 최초의 여성 방송통신위원장이 된다.

2024년 7월 4일 용산 청사에서 열린 지명소감에서 언론의 바이든 날리면 보도를 가짜 허위뉴스라고 규정했다. #

7월 24일, 인사청문회에서 질문에 “홍어족 표현 들어간 글 무심코 ‘좋아요’” “중학교 ‘준법정신 부족’ 생기부? 사춘기” “美서 교통법규 4번 위반…韓서 1건도 없어” # 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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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인사청문회에서 최민희 위원장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제적이였는지 자발적이였는지"를 묻자, "논쟁적 사안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이게 뭐가 논쟁적이냐"는 최민희 위원장의 반발에 "개인적 사안이므로 답변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하고, 재차 질문했으나 답변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미 일본군 위안부는 2000년 헤이그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 판결 요약문과 검사단 논고에서 강제적으로 동원된 것이라고 판결한 결과가 있다.[15]

2024년 7월 29일, 수많은 논란들로 인해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이진숙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한 뒤 이르면 31일 임명 강행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

2024년 7월 31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안을 발의하였다.#

이 위원장은 임명 재가 사실이 알려지기도 전에 출근했고,# 출근 10시간 만에 속전속결로 방문진과 KBS 이사진 13인 선임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에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MBC 사측도 직접 입장을 밝혔다. MBC 관계자는 31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선임을 “날림, 꼼수, 부실, 위법의 결정판”이라고 비판하며, “MBC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한 권력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여러 법적, 도덕적 수단을 준비하고 있다. 위법적으로 선임된 방문진 이사들이 기어이 칼을 휘두른다면 MBC는 절대 다수 시청자들의 사랑과 성원을 방패로 MBC가 진정한 의미의 '국민의 방송'으로 오롯이 제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

2.3.1.1. 탄핵소추 및 심판[편집]

2024년 8월 2일 취임 이틀만에 방통위 2인 체제 의결의 위법성을 사유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직무가 정지되었다. #

3. 비판 및 논란[편집]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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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 2020
정계 입문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2020
합당[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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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 2023
당명 변경
2023 - 현재
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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