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야구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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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청룡기 우승후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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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승을 일군 사람이 해방 이후 고교야구를 풍미한 전설적인 대투수 장태영. 1946년 중학교 3학년[7]이던 시절 유격수로 첫 전국대회 결승을 밟은 이후, 1947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활동하며, 투수로 던지던 내내 단 한 번의 패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며, 동 시대 무수한 라이벌들의 피눈물을 만들어 낸 원조 괴물투수의 활약 속에 초창기 고교야구 무대에서 경남고는 완벽한 강호로 군림했다. 그들이 진 단 한 경기는 장태영이 졌던 단 한 경기로 광주서중의 김양중과의 처절한 연장 12회 완투대결에서 실책이 빌미가 되어 결승점을 내준 것 하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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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등학교 시절 허구연. 참고로 60년대라 경남고 건물이 목조 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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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경남고는 1955년 황금사자기 우승 외에는 한동안 서울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 우승과는 살짝 거리가 멀었지만, 1967년 허구연을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오랜 우승의 갈증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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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제 21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당시. 사진에서 등번호 3번은 허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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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경남고등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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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의 역동적인 투구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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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이미 초고교급 강속구 투수로 불리던 최동원은 동시대 동갑내기 개띠 3총사로 불린 김시진, 김용남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976년 고교야구에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청룡기 결승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전력을 구축한 군산상고를 상대로 승자 결승에서 삼진 20개를 잡으면서 그야말로 군산상고 타선을 농락한 것. 최종 결승에서 다시 올라온 군산상고 상대로 다시 삼진 12개를 잡으며 완봉승을 거두면서 최동원은 한 시대를 완벽하게 지배한 투수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시기 경남고의 야수 전력은 그리 강한 것은 아니라서 이 청룡기 우승만이 최동원이 내세울 수 있는 고교 무대 주된 경력이 되고 말았다.
이 때의 경기는 35년 뒤인 2011년 고교야구 전설의 리매치 경남고 vs 군산상고의 모티브가 된 경기였는데, 최동원이 생전에 모습을 보인 마지막 무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점 이후 양상문의 부산고에게 부산 야구의 패권을 내주면서 한 동안 침체에 들어갔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고교야구 무대가 어느 정도 평준화가 된 탓에 경남고는 우승을 쉽게 할 수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과를 내면서 명문의 위상을 이어갔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유독 결승전에서 미끄러져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1980년대에만 무려 6번이나 되고 한 차례를 빼놓고는 전부 한 점차의 패배를 당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 당시 경남고가 당했던 결승전 불운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
- 1982년 황금사자기 결승 - 세광고등학교 야구부에 3:4 패 → 상대 에이스 송진우에게 막혔다.
- 1984년 대통령배 결승 - 서울고등학교 야구부에 3:4 패 → 상대 에이스 박형열에게[8] 막혔다.
- 1984년 황금사자기 결승 -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에 0:4 패 → 상대 에이스 이강철에게 막혔다.
- 1986년 대통령배 결승 -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에 1:2 패 → 연장 10회에 역전타를 얻어맞고 상대 에이스 조규제에게 막혔다.
- 1987년 청룡기 결승 - 대전고등학교 야구부에 5:6 패 → 연장 12회에 역전을 당했고 상대 에이스 구대성에게 막혔다.
- 1987년 황금사자기 결승 - 신일고등학교 야구부에 3:4 패 → 연장 10회에 역전을 당했고 상대 에이스 박철홍에게 막혔다.
이 당시 경남고는 한 명의 에이스에 의존하기보다는 탄탄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한 사실상의 토털 베이스볼로 매년 전국대회 상위권을 점유했지만 다른 학교와 달리 대회를 통째로 책임지던 초특급 에이스가 없어서 아깝게 우승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위의 역사에 나오는 1984년 두 차례 준우승과 1987년 두 차례 준우승이 그 증거다. 특히 대전고와의 1987년 청룡기 결승에서는 큰 경기에 대한 경험이나 객관적 전력 조합에서 경남고가 다소 앞서는 상황임에도 구대성이라는 특급 에이스에 막히면서 지는 등 결정적 순간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아울러 막판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 적도 많은데 1984년 서울고와의 대통령배 결승에서 3:1로 앞서다가 3:4로 뒤집어진 적이 있고 1986년과 1987년에는 연거푸 연장전에서 역전패를 당해 눈앞에서 우승을 날리기도 했다.
이런 아쉬운 우승과의 인연은 1990년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탄 박현승을 앞세워 청룡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깨끗하게 씻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손인호가 뛰던 1992년 다시 두 차례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강호로서의 위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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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의 에이스 송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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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두 차례 4강을 달성했던 경남고의 주역은 예의 그 탄탄한 선수층에 더해 2학년이었던 에이스 송승준이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송승준이 3학년이 된 1998년 경남고는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화려하게 비상했다. 비록 첫 대회인 대통령배 결승에서는 경남상고 상대로 연장 12회 한 점차로 앞서다가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고 지는 바람에 대회 첫 우승에 또 실패했지만송승준의 추억, 나머지 청룡기와 봉황대기에서는 다른 팀들을 압도하면서 우승에 성공하며, 1998년을 경남고의 한 해로 만들었다.
송승준은 이 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그 외 우승에 기여했던 2학년 투수 강민영이나[9] 타자 신민기, 김진욱, 서정호 같은 선수들은 프로에서 대성하지 못하고 사라진 아쉬운 세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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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당시 경남고 에이스 투수 이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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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통령배 1회전에서 덕수고(당시 덕수정보고) 2학년 류제국과 대결하여 3대2로 패했다. 류제국은 15탈삼진 완투승, 이대호는 8탈삼진 완투패를 당했다.[10] 같은 해 이대호와 장민석(舊 장기영)의 활약으로 부산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11]에서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채태인 - 이우민(舊 이승화)의 개성고(舊 부산상고)에 패배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2001년 대회에서는 1학년 장원준이 등장한 영원한 라이벌 부산고에게 극적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0년대 경남고 야구부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학부모와 코치진과의 갈등이 원인이 되어 우수한 선수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급기야 2003년에는 집단으로 전학을 가면서 단 한 차례도 전국무대에 서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 대표적으로 이 무렵에 경남고를 떠나 신일고로 전학을 간 선수가 서동환이다.[12][13] 이런 사태로 경남고의 전력은 약화된 채로 2003년 봉황대기에 참가했는데 정연회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종운 감독이 팀을 추스렸고 누구나 참가에 의의를 둔 줄 알았던 경남고 야구부는 2학년으로 유격수에서 투수로 급히 전향한 김상록[14]의 전경기 완투쇼에 힘입어 중앙고를 꺾고 극적으로 우승에 성공하면서 팀의 위기를 넘겼다.
그 뒤로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2006년 이상화 - 이재곤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결승전 연장 16회 접전끝에 광주진흥고에 승리하며 청룡기 우승, 2007년에는 하준호 - 장성우 배터리를 앞세워 결승전까지 달려온 강릉고의 돌풍을 잠재우고 다시 청룡기 우승, 2008년에는 박민규의 활약으로 청룡기 3연패를 노렸지만 대구고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하지만 2010년 다시 심창민 - 한현희 원투펀치를 앞세워 청룡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강호로서의 입지는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만 2010년대 접어들면서 팀의 전력이 약간 하향세인 점은 아쉬운 부분. 2010년 이후 2014년 협회장기 4강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2016년 봉황대기에서 모처럼 4강에 올랐으나 군산상고에게 막혀서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2017년 황금사자기에서 4강에 진출했으나 전년도 준우승 팀 마산용마고에게 1점 차로 패했다. 청룡기에서는 서울고에 져 초반에 탈락했고, 이어진 대통령배에서 19년 만에 결승에 진출(전국대회 통틀어서는 2010년 청룡기 우승 이후 7년 만)했으나 다시 만난 서울고를 상대로 9-13으로 패하며 대통령배의 한을 풀지 못했다. 2018년 황금사자기에서 다시 4강에 올랐으나 이번에는 광주일고에게 패했다.
2019년에는 부산고가 두 차례나 4강(청룡기, 대통령배)에 오르고, 개성고도 오랜만에 4강(청룡기)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으나 경남고 또한 봉황대기 8강에서 유신고를 물리치고 4강에 올랐다. 강릉고와의 준결승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연장 11회초에 대거 11실점을 하면서 무너졌다.
2022년 명문고 야구열전에선 신영우의 호투에 힙입어 결승에 진출했지만 덕수고에게 패배했으며 신세계 이마트배 대회에선 코로나19로 주축선수들이 경기 당일에 간신히 합류하는 악재가 터지며 1회전에서 인상고한테 패하며 탈락했다.
이어진 주말리그 전반기에서는 전승을 기록했다. 황금사자기에서는 1회전부터 난적인 덕수고를 만났으나 4:3으로 꺾었으며 2회전에서 장안고, 16강전에서 덕적고에 각각 콜드게임승을 거뒀다. 8강전에서는 이마트배 우승 팀 북일고에 6:3으로 승리를 거두고 준결승에 올랐으며 준결승에서 선린인터넷고에 8:4로 승리해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창단 처음으로 전국대회 결승에 오른 평택청담고였는데, 0:2로 뒤지다 7회 5점을 내며, 결국 7:2로 대역전을 하며 12년만에 전국대회 우승과 함께 48년만에 7번째 황금사자기 우승을 달성하였다.
청룡기에선 1회전부터 마산고에게 연장 승부치기 끝에 역전패를 당하면 1차전부터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대통령배와 봉황대기에서는 16강에서 덕수고한테 패하며 탈락했다.
2022년 열린 신인드래프트에서는 대학 지명자까지 합하면 7명이 지명되면서 가장 많은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2023년에는 황금세대가 졸업한 후 상대적으로 약해진 전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황금사자기 1차전에서 충암고에 8:0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15]. 같은 해 8월 대통령배에서 1회전 부전승, 2회전에서 마산고에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했으나 경기고에게 패했다.
봉황대기에서는 2회전에선 충암고와 맞붙어서 11회초까지 5:4로 지고 있다가 11회말 1아웃 주자 2,3루 상황에서 끝내기 2루타가 나오면서 5:6로 충암고를 누르고 32강에 진출했고 32강에서는 손쉽게 북일고를 12:2 5회 콜드로 이기고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선 부산고를 8:9로 꺾고 8강에 진출하였다.
202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선 결국 전원 미지명이 되는 굴욕을 맛봤다. 특히 작년 황사기 MVP 나윤호와 외야수 조세익의 미지명은 굉장히 의외라는 평. 그나마 졸업생인 고영우가 지명을 받기는 했지만.
2020년대 들어서 부산 고교야구의 주도권을 박계원 감독이 부임한 부산고에 다시 내줬다는 평이 많다.
2024년 이마트배에서 광주일고, 신일고, 성남고, 순천효천고, 경기고에 차례대로 승리를 거두고 준결승전에 진출해 덕수고와 대결한다.
야구대제전 첫 2연패를 달성한 팀.
- 역대전적 : 12승 3패(부전승 1승 포함)
- 최고기록 : 우승(제1회 야구대제전, 제2회 야구대제전)
제1회 야구대제전(1979년), 제2회 야구대제전(1980년)을 모두 석권하며 처음으로 2연패를 달성했다. 당시 야구대제전은 실업야구와 아마야구의 에이스들이 참가했으며 지금과 달리 지역색이 워낙 강하고 모교에 대한 애교심이 강해서 고교야구가 무척이나 강세였던 시기였기때문에 선수들도 부상등을 이유로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1회 야구대제전에서는 1회전에서 휘문고등학교와 만나 4:3 신승으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임호균을 앞세운 인천고등학교를 만났지만 최동원를 앞세워 3:0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후 8강전에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꺾고 올라온 배문고등학교와의 격돌했지만 우경하(1회 솔로), 박순철(2회 솔로), 김용희(3회 솔로)의 홈런등으로 8:0으로 7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 4강에서 지역 라이벌 부산고등학교와 마주하게 되었다.
부산고등학교는 양상문을 선발로, 경남고등학교는 휘문고, 배문고전때 위장선발로 투입되었던 박정후를 선발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라이벌전은 양상문이 4회에 우경하-김용희-차동열에게 3연타자 홈런을 얻어맞으며 3실점을 했고 4회에 3:0로 앞서나가자 경남고등학교는 최동원을 4회 말에 투입했고 최동원은 4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내며 경남고의 결승진출에 일조했다. 양상문은 선발투수로써도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좌익수로 투입되었던 8회에 송구실책으로 1실점을 내주며 4실점 모두 본인이 기록하는 등 최악의 경기를 치렀다.
결승전에서는 이만수-장효조-우용득이 버티던 대구상업고등학교를 꺾고 올라온 선린상업고등학교와 맞붙게 되었는데 경남고등학교는 최동원을 선발로, 선린상업고등학교는 이길환을 선발로 내세웠다. 경남고가 3번타자 우경하가 솔로홈런을 치면서 앞서나갔으나 곧이어 선린상고가 4번타자 김우열이 볼넷으로 출루한후 도루한 상황에서 5번타자 정종연이 안타를 치며 김우열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1:1의 균형을 맞추었다. 5회초 경남고는 4번타자 김용희가 적시타로 1득점, 6회초 우경하가 솔로홈런으로 3:1을 만들며 경남고가 앞서나갔다. 선린상고는 6회말 이해창이 최동원에게 솔로홈런을 치며 3:2로 따라붙었고 팽팽한 접전을 유지했으나 6회초에 교체투입된 투수 유남호가 7회초에 김성관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고, 9회말에 홈런을 맞으며 6:3으로 경남고가 승리하게 되었다. 이날 최동원은 9이닝 4피안타 3실점 완투승을 기록하며 승리에 일조했고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김용희는 최우수선수(MVP)를 수상, 결승전에서 2홈런을 기록한 우경하는 수훈상을 받았다.
전년도 우승팀이었던 경남고는 배문고와의 1회전 경기에서 에이스 최동원을 투입하지도 않고 7:2로 승리, 2회전에서 1회 대회 결승전 상대였던 선린상고를 만나서 위장선발로 사용한 박정후가 1회를 채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최동원과 교체되었고 김용희의 홈런과 우경하의 2루타등으로 5:2 승리를 거두었다.
8강전에서 동산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천창호가 역투를 펼치며 6:3으로 승리를 하며 4강에 진출했고 4강전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지역 라이벌인 부산고등학교와 2년 연속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경남고는 1회에는 천창호를 올렸고 2회에는 최동원을 올리며 팀 승리에 전력을 다했고 부산고도 김재열과 안창완을 투입하며 지난해 패배를 설욕하고자 했다. 그러나 투수전이 될 것이라는 모든이의 예상을 깨고 2회부터 2:2로 타격전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김용희가 3회에 투런홈런을 기록하며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부산고는 최동원에게 3점을 더 뽑아냈지만 막강한 경남고의 타선을 넘지 못하고 8:5로 2년연속 4강에서 라이벌인 부산고를 격파했다.
결승전에서는 군산상업고등학교를 꺾고[16]올라온 중앙고등학교와 경기를 가졌다. 경남고는 최동원을, 중앙고는 계형철을 선발로 내세웠는데 계형철의 폭투와 실책으로 경남고가 2:0으로 앞서나가던 4회, 최동원을 상대로 운몽룡의 번트를 경남고 내야수가 실책을 기록하며 2실점하며 2:2 동점. 그후 중앙고는 윤몽룡을 구원투수로 올렸고 최동원과 윤몽룡의 투수전이 이어졌다.
팽팽하던 투수전이 깨진건 8회에 경남고 우경하가 1타점을 기록했고 최동원이 9회말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3:2로 대회 첫 2연패를 달성했다. 최동원은 2년연속 최우수 투수상, 김용희는 2년연속 최우수선수(MVP), 우경하는 2년연속 수훈상을 기록했다.
3회 대회때는 1981년 코리안시리즈 중이라 코시진출팀 롯데 자이언트 소속이었던 최동원은 참가하지 못했지만 황규봉, 이선희가 불참한 경북고를 상대로 김용희의 만루홈런등을 포함해 7:4 역전승으로 2회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2회전에서 만난 동대문상고의 선발투수 강철원을 공략하지 못했고 오히려 윤동균, 이광국의 홈런으로 7:4 패배를 기록하며 경남고의 야구대제전 연승행진은 멈추게 된다.[17]
2013 야구대제전에서는 전주고를 만나 1회전 조별 탈락을 기록했다.
2014 야구대제전에서는 광주 동성고를 만나서 1회전 조별 탈락을 했다.
2015 야구대제전은 결승전에서 북일고를 4-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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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라이벌로는 부산고등학교가 있다. 경남고 부산고는 전통적으로 상대 학교보다 그 무엇이든 간에 잘해야 하는데 야구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기사[18]
경남고의 에이스였던 이대호가 말하길 "정기전은 없지만 지역예선에서 만나게 되면 무조건 이겨야 했다."고 이야기 했을 정도였으며 이들의 라이벌리를 이용한 이벤트 경기가 2011년에 열리기도 했다. 다만 2010년 이후로는 경남고등학교가 부산고등학교에 비해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경남고등학교가 부산고등학교를 다시 앞서가고 있다.[19]
바로 윗 문단과 연계되는 특징으로, 학벌, 파벌 의식이 강한 롯데 자이언츠의 성골 학벌이다. 라이벌 부산고는 진골. 2000년대 제리 로이스터 시절만해도 지금과 달리 부산고가 성골, 경남고를 진골로 불렀을 정도로 부산고 세가 강력했으나 부산고 라인 수장격인 손민한이 횡령에 휘말려 몰락했다 다른팀도 아닌 NC로 가고, 장원준이 FA때 더 적은 금액에 두산과 싸인한데다 조성옥-조찬희 부자와 조성옥 후임 부산고 감독 시절[20]에는 유망주 해외유출 시도가 이어지자 극성맞은 롯데 팬덤에선 부산고 출신은 걸러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올 정도로 찍혀서 몰락하고 경남고 원탑 체제가 되었다.[21]
성골&진골 따지는 게 어느 정도였냐면 제주도 출생에 포항제철고 출신 강민호는 롯데 자이언츠 시절 리그 최고의 포수로 자리잡은 2011년 이후 쭉 갈매기 마당 같은 일부 강성 롯데팬들한테서 경남고 출신 포수들과 비교당하며 욕을 먹었다. 장성우가 있을때는 곧잘 비교당하며 수비 못한다는 지적을 들었고 장성우가 KT로 떠난 이후론 애송이 김준태보다 포수 리드가 구리다는 어처구니 없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22]
야구도 못하면서 분란만 일으키는게 지긋지긋해진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는 야구 잘하면 그게 바로 성골이라는 입장이지만 고연령층 이용자가 많은 갈매기 마당은 여전히 고향이 어딘지 어느고교를 나왔는지를 따지며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단, 한화의 북일고 VS 비북일고 떡밥과 마찬가지로 일부에서는 파벌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 역사가 오래된 명문 학교다보니 가족 단위로 경남고에 입학하는 경우도 많아서, 가족인 동시에 선후배라는 기묘한 관계인 선수들도 많다. 비교적 나이 차가 적은 형제 관계로는 김주형&김찬형 형제나 이주찬&이주형 형제가 있으며[23], 부자 관계로는 임경완과 아들 임정형[24] 등이 전부 경남고 출신이다.
- 은근히 사이드암, 언더핸드 명가로 불리고 있다. 신고선수로 입단한 박석진을 시작으로 1차 지명-전체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선수만 임경완, 이재곤(...), 심창민, 한현희,
서준원으로 5명이나 되며 최근에도 현대 야구에서 드문 정통파 언더핸드 투수인 노운현의 2차 4라운드 지명으로 언더핸드 명가의 모습을 이어나가고 있다. - 경남고 출신 주축선수들이 늘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이대호, 송승준, 장성우, 심창민, 한현희, 서준원, 한동희, 노시환 등 프로 입단 이후 벌크업이든 살크업이든(...) 체격이 엄청나게 커진 선수들이 많아서 경남고 출신 야구선수들을 보고 경남고칼로리라는 웃픈 별명으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 2023년 기준으로 연고지 부산이 아닌 수도권에 있는 창단 10주년 및 1군 참가 9년 차를 맞이한 kt wiz에 경남고 출신 선수가 무려 7명이나 된다. 이는 KT 구단이 워낙 롯데와의 트레이드가 많았던 영향이 크다. 옆동네 창원 연고지 구단인 NC 다이노스에 경남고 출신 선수가 5명 있다. NC다이노스는 경남고 출신 뿐만 아니라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선수들이 꽤 있다.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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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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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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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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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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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1954~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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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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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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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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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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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1970)-고려대-한일은행(1975~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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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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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원년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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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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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원년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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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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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원년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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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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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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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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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롯데(1992~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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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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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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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신고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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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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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신고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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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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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롯데(1995~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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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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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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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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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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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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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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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롯데(200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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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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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BOS)/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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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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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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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롯데(200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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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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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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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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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신고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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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KIA(200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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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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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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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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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고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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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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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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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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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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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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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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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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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LG(201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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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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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2009~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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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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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육성선수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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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KT(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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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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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육성선수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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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KIA(201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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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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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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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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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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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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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키움(2012~2022)
롯데(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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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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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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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육성선수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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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kt(20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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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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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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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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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키움(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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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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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육성선수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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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롯데(20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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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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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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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201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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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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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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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육성선수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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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영동대-두산(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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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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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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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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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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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육성선수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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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롯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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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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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육성선수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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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SSG(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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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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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키움(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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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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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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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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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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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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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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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육성선수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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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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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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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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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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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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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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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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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201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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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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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두산(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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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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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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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NC(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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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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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키움(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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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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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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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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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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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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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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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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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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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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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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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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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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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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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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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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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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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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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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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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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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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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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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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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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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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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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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